'지하철 담배녀', '국물녀', '분당선 막말녀'. 아마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들어 봤음직한 말일 것이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포탈 검색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XX녀'로 지칭되는 뭇 여성들이다. 이를 검색하면 인터넷 신문부터 블로그, 카페까지 'XX녀'들에 대한 해당 동영상과 사진들이 적나라하게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글 밑에 달린 덧글들에는 각종 욕설과 비하가 난무하다.

 물론 사건 자체만 보아서는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는 사건보다는 어떤 '여자'가 그 일을 벌였다는 것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 진다. SNS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XX녀'라고 이름 붙여진 동영상과 글은 구체적인 상황이나 원인이 밝혀지기 전에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재빨리 퍼다 나르며 욕하기에 바쁘다. 특히나 이러한 글에는 언제나 여성이라는 성별에 집중된 비난이 섞여있다. 세상에는 매일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것은 남자, 혹은 여자 모두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 왜 유독 인터넷에서는 'XX녀'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는 것일까.

 이는 아직도 사회에 팽배한 가부장적 관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권 신장, 남여 평등을 외치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편향된 시선은 의외의 곳인 인터넷에서 고개를 치민다. 이제 남성 중심적 사고를 가진 이들은 밖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대놓고 외치지 않는다. 은밀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물리적 힘이 약해 반격의 위협이 없는 여성을 엄격한 그들만의 잣대로 평가하고 벌주려 한다. 흔히 '여자 마초'라고 불리는 여성들은 이러한 가부장적인 생각에 편승하여 같은 여성을 더욱 억압한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제 2의 성>에서 모든 권력과 세습적 위신을 누리는 남성은 여성을 '타자(他子)'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는 남성적이고 위엄 있는 우월자의 모습을 보이려고 근심하고 있다. 그들은 여자들에 대하여 적의(敵意)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여자들을 무서워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이 출간되고 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보부아르의 말에 공감한다. 이를 통해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인지 실감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한 여성은 도마 위에 올려 진다. 그리고 이는 클릭수, 조회수가 중요한 가상 공간에서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XX녀'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재생산된다. 이렇게 해서 'XX녀'들은 눈 먼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난도질당하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정의의 사도가 된 것과 같은 쾌감을 만끽한다. 여성의 위상이 바뀌고 있는 과도기에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함을 'XX녀'를 통해 해소한다.

 우리도 여성으로서 세상의 잣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터넷에서 소위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것이 여대, 그 중에서도 이화이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들에 대한 어떤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더라도 여성으로서 최소한의 문제 의식은 가져야 한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시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고 현 상황의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보부아르는 <제 2의 성> 말미에서 '아무튼 장래에 여자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얻게 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이러한 변화는 내면적인 변모를 동반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이화인 개개인이 당장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화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우리부터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다면 곧 세상도 바뀌리라 믿는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