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 GOD에 빠져 ‘거짓말’, ‘애수’를 듣고 또 들었던 무렵이었다. “엄마, 왜 대부분 노래가 ‘사랑’을 얘기해?”라고 묻자 엄마로부터 “음.. 사랑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니까 그렇지”라는 답을 들었다. 물론 당시 필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사랑에 뒤따르는 이 울렁거림이 얼마나 귀한지.

 헷갈리는 이들도 있나 보다. 요즘 필자와 같은 몇몇 청춘들은 자신의 사랑이 자신의 삶을 흔드는 것이 두렵단다. 시간이 없어서. 자신의 상황이 안정되지도 않았는데 연애를 어떻게 할 수 있냐고. 취업하면 생각해보겠다고. 더러 일부는 자신을 바쳐 사랑한 뒤에 남는 그 상처에 허덕이고 싶지 않다고. 내가 노력한 일과 공부는 나에게 상처를 주진 않는다고.

 필자도 얼마 전 반짝거리던 3년간의 사랑을 끝냈다. 마음을 정리하러 혼자 떠난 경남 하동, 버스를 타고 평사리를 지나 벚꽃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가로수 길을 지나는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무를 스쳐가고 꼬부랑거리는 길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마다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이 가로수 길에 펼쳐졌다. “이렇게 아픈데. 사랑하지 않아야지. 연애해도 마음 주지 말아야지.” 되뇌며 한 할머니가 건넨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다. 사랑해서 기뻤고, 사랑받아서 경이로웠고,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미처 삭제 못한 사진을 마주치면 칼에 베인 듯 쓰라렸다. 그러나 이내 내 사랑을 위해 저질렀던 무모한 행동들에 피식 웃게 됐다. 사랑 안에서 한없이 경이로웠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아서일까.

 이 편지지 위의 얼룩들은/ 내가 흘린 눈물이 아니라/ 당신께로 달려가는 긴 호흡들이라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연인 밀레나를 위한 편지 중 한 구절이다. 밀레나는 카프카가 교류한 여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의 문학을 이해했고 그에게 정신적 피난처였다. 최후의 순간까지 그녀를 위해 편지를 남기며 그녀의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녀는 외부와 그를 연결시켜주는 등불이었으며 이제는 카프카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우리도 카프카와 같다. 사랑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걸 보게 하고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만든다. 세상이 모두 내게 등을 돌릴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은 투명한 나의 사랑이다. 질주하는 시간들 속에 나를 품에 안고 초침을 똑딱 느리게 해주는 존재 또한 사랑이다. 우리의 꿈은 내 사랑의 미래가 되어 우리는 설렘을 안고 하루하루 풍요롭게 살아간다.

 필자 또한 다시 설레려고 한다. ‘불합격’이라는 팝업창에 쓰라린 마음을 쓸어내릴 시간이 길어져도, 그럴수록 더 사랑하리라. 끝은 상처투성이어도 사랑하는 동안에는 내 가면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식처를 찾겠다. 이번에는 더 후회 없이 내 사랑 앞에서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나를 향한 따뜻한 가슴을 느끼리라. 톡, 반짝이는 사랑이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왔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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