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1991년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랑이 뭐길래>에서 남자 주인공 대발이가 아내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지아비 부(夫)자가 하늘 천(天)자에 상투 하나 얹어 만들어진 글자라며 하늘같은 남편에게 지극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겁 없이 떠들던 남자들이 다소 많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2012년. 그건 조선시대의 이념이며 드라마의 소재로나 가능할 것이라 주장한다면, “정말 그래?”라고 묻고 싶다.

물론 생명의 씨앗을 품은 대지의 여신을 생각하면 여성을 땅에 비유한 것이 여성비하적인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가능하고, “남자는 하늘, 여자는 하느님”이라고 바꾸어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요즘은 하늘은 값도 안 쳐주지만 땅값은 너무 비싸니까 여자가 땅이라는 말에 너무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언중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정말로 내 마음 깊은 곳에 우리의 남녀는 동등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몇 해 전에 학생들이 남녀대학생을 상대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연상어휘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남자와 여자에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특성, 자질을 이르는 말로, 따라서 이를 듣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우리 사회에서 남자/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단초가 될 것이다. 조사결과, 근육, 키, 군대, 자동차(남성다움)나 긴 머리, 치마, 화장품, S라인(여성다움) 등 육체나 소유물로 답하기도 했고, 늠름하다, 훤칠하다, 씩씩하다, 당당하다, 강인하다, 용감하다(남성다움) 청순하다, 예쁘다, 참하다, 얌전하다, 단아하다, 착하다 (여성다움) 등 남자/여자가 어떠한지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상대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눈, 코, 입 등 개별요소 하나하나가 독특한 인상을 부여하기도 하고 성품을 반영하는 행동, 태도가 이와 어우러져 평가를 좌우하기도 한다. 앞서 여성/남성이 어떠한지를 표현한 말은 모두 정서적인 자극에 유쾌하게 응하는 미감적 향유를 공통의미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개별의미를 살펴보면, 성별로 다른 이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자질이 서로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양을 평가하는 말, 그러니까 남성다움을 들었을 때 연상해 낸 ‘건장하다, 훤칠하다’와 여성다움을 들었을 때 연상해 낸 ‘청순하다, 단아하다, 예쁘다’의 의미만 가지고 보아도 알 수 있다. 얼굴이나 몸매 등 겉으로 드러나는 미감을 묘사대상으로 하는 예쁘다나 한복의 아름다움이 떠오르는 단아하다, 그리고 여고생들의 얌전하게 땋아 내린 가랑머리가 떠오르는 청순하다를 고려해 보건대, 여성다움은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미성숙한 여성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 자신만의 영역에서 경력을 쌓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성숙한 여성들의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다.

이에 반해 남성다움의 연상어휘들은 균형 잡힌 건강한 육체미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체격, 장골과 같이 몸의 골격을 묘사대상으로 하는 건장하다와 키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훤칠하다, 그리고 기초체력의 튼튼함을 변별적 특징으로 갖는 강건하다는 앞서 키와 근육을 남성다움의 연상어휘로 답한 것과 일치한다. 육체, 힘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것은 전쟁을 통해 타인과 싸워 승리를 쟁취하려는 군인의 이미지로 표상되는 서구 남성의 것과 겹치며, 더 거슬러 가면 생물학적 차이를 바탕으로 자연재해에 맞서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집 밖을 활동영역으로 삼았던 원시수렵시대 남성 이미지와도 관련을 맺는다.

거기다 성품, 태도가 외양과 함께 어우러져 미감을 불러일으키는 나머지 연상어휘들까지 고려하면, 남성다움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을!”이라는 로마의 구호로 대체 가능하다. 두려움을 이기고 평정의 마음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남성의 이미지를 씩씩하다, 용감하다에서 읽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 굽히지 않고 견디어 낸 모습을 당당하다나 강인하다에서 느낄 수 있다. 반면에 결혼적령기의 여성, 조신하고 순종적인 여성을 묘사한 참하다와 얌전하다, 그리고 나이, 지위 등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잘 사용하지 않는 착하다를 여성다움에서 연상해낸 것은 성불평등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왔던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상이 우리의 무의식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사회문화적 환경이 변화되었고 이에 따라 다양한 현대적 이미지를 가진 여성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중매체에서 생산하는 남녀이미지에는 남성은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집에서 살림을 하는 성별 분업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의 연상어휘들이 갖는 함의에도 반영되어, 이들의 의미에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굳어져버린 전통적인 여성/남성의 역할이 담겨 있었다. 여성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길이 멀다고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 여성답다란 말에서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활발함, 현명함, 페미니즘, 진취적이라는 말을 떠올린 이도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는 힘든 여정도 이들과 연대하여 나아간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새 시대를 열어갈 여성 여러분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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