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는 사람과 공통점이 많다. 온도, 습도 조절은 기본이라 필요에 따라서는 가습기, 제습기, 에어컨을 동원해 적절한 환경을 유지해 주어야 하고 무리해서 쓰다 보면 컨디션이 떨어져서 휴식이 필요하다. 때로는 악기의사를 찾아가기도 하며 외관상으로는 수시로 닦고 광택을 내주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예술의전당에서 20여 년간 사용되었던 '늙은 명품' 피아노가 전면적으로 수리에 들어간다는 기사를 보았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신한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갈수록 정신 없이 변하는 사회에 버거움을 느끼고 있던 터였는데 여간 반갑지 않았다.

그 피아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산 슈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이다. 오랜 기간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군림하며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맞이하고 수많은 청중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명기이다. 하지만 수천 번의 공연을 통해 제 기능이 떨어지면서 리사이틀홀로, 리허설용으로, 대기실 연습용으로 이사를 다니며 뒷방 신세가 된 모양이다.

인간 수명이 100세인 시대를 맞아 이 한 몸 계속 리모델링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건만, 나이 들어 쓰임이 신통치 않은 피아노가 명품으로 재 탄생한다는 기사는 단순한 악기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언젠가부터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그 변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의 진화인 것 같다. 신제품이 나오자마자 바로 다음 최신형의 출시 광고는 소비자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구매 즉시 만끽하는 희열이 얼마 안가서 뒤로 밀리는 허탈감으로 곤두박질치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잠시라도 흐름에 무관심했다가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스피드 시대'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년 세대는 어르신들로부터 '우리 어렸을 적엔… '으로 시작하는 충고를 교훈으로 듣고 살았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자란 우리가 정작 아래 세대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화성인 취급 받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설자리가 마땅치 않은 과도기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최신 스마트폰과 개선의 여지가 있는 낡은 명품 피아노, 즉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양손에 모두 소유하고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우리가 되려 특혜를 받은 세대이지 않은가.

음악을 들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이막스인 경우는 없다. 멜로디가 전개되다가 쉬기도 하고 화음의 갈등과 화합이 있고, 슬픔 방황 아름다움 즐거움을 거쳐 클라이막스에 도달했다가 서서히 스러져가는 끝맺음이 있다. 마치 우리 인생과 같다.

끊임없이 클라이막스만을 추구하는 지금의 디지털 시기가 지나면 아날로그의 감성을 찾는 시대가 다시 올 것이다. 사람은 발전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취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지만 이미 낡은 본인을 스스로 가꾸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장된 수명으로 인한 긴 시간을 변화 없이 보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생 견적서를 꾸며 보자. 달력 두 장 남은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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