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수완나품국제공항, 게이트를빠져나오자 눅눅하고 습한 공기가 비행으로 지친 여행객을 감쌌다. 방금 비라도 쏟아진 듯한 습기와 뜨뜻하고 미지근한 기운이 우리나라에선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시내 곳곳의 화려한 불교사원과 궁, 짜오프라야강과 수상가옥들은 방콕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탑승 전에 가격을 흥정하는 뚝뚝(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도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보트도 신기했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이 관광뿐이라면 섭섭하다. 여행지의 문화를 보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완성이 아닐까? 내가 본 태국 사람들의 얼굴엔 항상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했고, 행동에선 친절함이 흘렀다. 일주일 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새태국의 문화에 적응이 된건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태국이 그리웠다. 심지어 인천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두 손을 모으고 “싸와디캅!”이라고 인사했을 정도로 흡족한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대학 합격 결과가 난 후에 고민 없이 떠났던 일본여행에서는 우리와 너무 비슷한 것들이 많아 또 다른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완전 한국이랑 똑같아!”라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고, 반면 교차하는 지하철 노선이 너무 많아 복잡했던 신주쿠역에서 우리나라의 지하철 시스템은 정말 좋은 것이라며 새삼 고마움을 느끼기도했다. 여행의 과정에선 평소 인식하지 않았던 것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아마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것 같다.이토록 우리가 여행을 갈망하는 건 일상의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얻는 ‘일탈’때문이 아닐까.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유명한 관광지를 직접 보는 것에 의의를 둘 수도 있고, 새로운 곳에서 흘러가는 일상을 제 3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도 흥미로운 여행 주제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필자는 서울을 떠나 있었던 적이 별로 없는, 어떻게 보면 불쌍한 도시민이다. 그래서여행이라고 하면 꼭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해외여행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깝게는 대중교통을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도, 혹은 ‘서울’만 떠나도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작년, 경복궁에 놀러 갔다가 ‘서울 성곽길’을 만났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아니고, 도심에 성곽길이라니 등산이라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우리가 잘 아는 삼청동이나 청운동에서 성곽길로 들어갈 수 있는데 옛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성곽길에 오르면 서울, 옛 한양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그리고 동물원에만 있는 줄 알았던 꽃사슴도 만났다. 고층 빌딩과 끊임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이미지였던 서울이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지난 여름에 친구와 다녀온 전라도 기행은 무의식 속에 ‘서울=한국’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협함을 깨주었다. 보성의 녹차밭과 담양의 죽녹원, 관방제림, 그리고 순천만까지. 도시에 있었다면 사진으로만 봤을푸른빛 가득한 진짜 여름을 보고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라도의 한정식은 이전까지는 몰랐던, 진짜 한국 음식을 만나게 해줬다.

중간시험과 각종 과제, 행사로 찌들은 4월을 보내고, 짧아진 옷차림으로 등장한 5월. 지루했던 일상은 잠시 접어두고 어디든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필자는 자꾸만 세계엑스포가 열리는 ‘여수’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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