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답다’를 대하는 남녀의 의식 차이

‘연상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이를테면 몇 년 전의 메모장을 꺼내들고 읽다보면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연상의 대상은 인상적인 사건일 수도 있고, 학습과 경험을 통해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동일 언어공동체의 집단 경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전쟁’은 1950년 6.25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현충일, 국립묘지, 오열하는 유가족, 북한의 핵위협, 핵전쟁 등의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단어 연상은 수십 년간에 걸친 백과사전적 지식과 복잡하게 연결되면서 문화원형적 지식을 형성한다.

단어 연상을 이용해 남녀의 문제를 해석해 보았을 때, 우리에게 각인된 여성의 모습과 남성의 모습은 어떠한 결과를 보일까? 인류를 생물학적으로 나눈다면 남자와 여자로 분류된다, 이때 ‘분류’는 염색체, 생식기관 등에 의한 것일 뿐, 사회에서의 역할마저 서로 다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물학적 기준에 의한 성역할로 고정화된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여성과 남성에 부여된 가치는 남자:여자=지배:피지배의 관계로 패턴화해 왔다. 따라서 여성, 남성이란 단어를 듣게 되면 연상 작용에 의해 이와 관련된 지식, 정서 등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게 되고 어떤 단어가 연상이 되는지 응답을 하고자 하면 규칙화되어 있는 기억에 의해 전통적인 성역할 이미지를 반응으로 나타내게 될 것이다.

몇 해 전에 학생들이 ‘여성답다’란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말이 연상이 되는지를 남녀 대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적이 있다. 여성답다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이지만, 여성은 사회학적인 성의 구별을 말하는 것이며 ‘-답다’는 [그러한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임에 기대어 보면 여성답다는 여자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뜻하는 어휘라 하겠다. 따라서 여성답다란 말을 들었을 때 연상된 말은 마땅히 여성이 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성질에 대한 현 대학생들의 무의식을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조사결과부터 제시해 보면, 여성답다는 단어를 들으면 대학생들은 청순하다, 착하다, 예쁘다, 얌전하다, 상냥하다, 참하다, 따뜻하다, 부드럽다, 아름답다, 단아하다의 순서로 연상된다고 답을 하였다. 이들 어휘들은 청순하다만이 여성을 묘사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을 뿐, 나머지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 아이, 동식물, 사물 등 다양한 대상을 묘사대상으로 한다. 특히 문화재, 건물 등의 사물을 묘사대상으로 하는 어휘는 여성이 인간이 아닌 사물로 취급될 수 있음을 보인다. 더구나 따뜻하다는 온몸에서 전해지는 자극을, 부드럽다는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자극을 알아채는 감각형용사이며, 상냥하다 역시 성녕ᄒᆞ다(手工하다)에 기원을 두고 있어서 여성다움을 형용할 고유의 언어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여성의 현실을 읽을 수 있다. 이는 남성 의사를 의사라 부르면서 굳이 여자 의사는 여의사라고 불러, 사회의 준거기준이 되는 무표적 위치에 남성이 위치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현실은 성별로 여성다움의 연상 강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어휘의 의미 차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름답다는 여성이 주로 연상해 낸 데 비해 예쁘다는 남성만이 연상해 냈는데, 이를 통해 여성이 스스로 생각하는 여성의 모습과 남성이 생각하는 여성의 모습은 다소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쁘다는 ‘눈, 코, 입 어느 한 군데 안 예쁜 데가 없어.’와 같이 우리의 외양을 평가대상으로 놓는 데 비해 아름답다는 ‘전태열 열사의 아름다운 자기 희생’과 같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평가대상으로 놓이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남성이 아직도 여성에게 필요한 자질로서 외양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과 달리 여성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여성은 외모와 성적인 영역에 한정되어 여성을 바라보던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화기는 처음으로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와 바깥 출입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였으며, 어느 때보다도 진보적인 여성담론이 유행하였던 시기이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였으면서도, 진보논객이라 자처하는 필진은 여전히 집안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여성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러한 모습이 개화기 때만의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여대생의 수가 많아지고 사회에 진출한 여성의 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결혼 후 많은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데 매달리고 있다. 아이는 애프터서비스가 없으니 나중을 위해서라도 아이에게 전력을 다하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결혼 후 직장을 퇴사하였다가 아이를 키워놓고 재취업을 하려다 보니 단순사무직에서 만족해야 할 수밖에 없음을 한탄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높다. 지금의 현실이 개화기 때의 여성과 큰 차이를 느낄 만큼 진보되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인지언어학자들은 어떤 말을 듣게 되면 연상 작용을 일으키게 되고 그에 응답을 하고자 하면 조건화, 규칙화되어 있는 기억이 반응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한다. 외부의 자극을 받아 뇌에 저장되는 개별정보들은 각각 분산되어 저장되지만 뇌에서 분석한 그들의 관계가 함께 저장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언어의 의미란 연상 작용에 의해 반응하는 조건(규칙)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자질’을 의미하는 ‘여성답다’를 자극어로 제시하였을 때 대학생들이 답한 반응어의 면면을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여성다움의 의미는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우리의 무의식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었다.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진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언젠가 여성답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 떠오를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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