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사로잡는 순간이 있다. ‘눈부신 아름다움’이나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다’는 표현이 바로 이러한 매혹의 순간이다. 플라톤은 미의 대상을 ‘가장 눈부시고 환하게 비추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학」에서는 이러한 미적 체험을 ‘일상의 자리에서 벗어나는(ek-stasis)’느낌이자 스스로 존재가 고양되는 느낌이라 말한다. 시선을 사로잡는 미술을 미학적으로 읽어보자.

△예술의 시작은 모방

미학은 미적 경험, 어떠한 미적 대상으로부터 얻은 미적 가치를 분석하는 일로, 주된 탐구 대상은 그 기초 위에서 특히 미적 가치가 의식적으로 추구되는 예술이다. 「미학강의」에서는 미학의 역사가 예술에 대한 여러 정의들로 설명돼 왔다고 언급한다. 미학의 중심 문제인 예술이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이라는 의미다. 더불어 예술에 관해서는 한 가지 접근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여러 과학적 접근과 서로 다른 철학적 접근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이론 또한 다양하다.

미학은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학문으로 등장했지만 실질적인 미적 경험과 예술에 대한 이론은 서구 사상의 태동기인 희랍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는 예술에 국한된 개념도 아니었으며, 18세기 이전까지는 예술이라는 말이나 그 말로 대변되는 일정한 체제도 없었다.

「미학」을 통해 살펴본 최초의 대표적 예술 이론은 고대 그리스 예술을 배경으로 등장한 모방론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사람들은 예술이 외부 대상이나 사건을 실재하는 것처럼 생생히 재현하기를 바랐으며 이런 예술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스 미술은 인간을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상으로 파악하고 이를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냈다. 멜로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of Melos)라고도 불리는 밀로의 비너스가 이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밀로의 비너스는 신체라는 대상을 철저히 관찰해 머리카락의 형상, 옷에 가린 다리의 형태 등에서 완전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작품이다.

이에 그림을 모방하는 활동이 시각적인 모방일 뿐만 아니라 그 본질에 관한 철학적 모방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플라톤은 모방적인 회화를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을 위해 사람이 만든 꿈’으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누스는 그림의 모방이 현실의 결점을 보충해 이상적인 세계를 형상화하는 방향으로까지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론가들의 논리에 토대를 둔 고대 예술은 철학적 예술 모방을 기반으로 신에 대한 탐구인 중세 종교 예술로 나아갔다.


△사람 중심의 과학적 예술 전개된 르네상스 시기

14~16세기 르네상스 시기에는 ‘인간’ 자체에 주목한 인문학 연구가 활발했다. 「미학강의」에서는 당시 미술가들이 기존의 도제적 훈련만으로는 인문학적인 미술을 창조해내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언급한다. 곧 미술가들이 이전보다 고도의 방식으로 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에 미술인이란 학자와도 같은 지식인이 돼야 한다는 시대적 배경 아래 ‘미술 아카데미(Accademia del disegno)’, ‘성 루카 아카데미(Accademia di S. Luca)’등이 설립됐다. 이러한 미술 아카데미의 확립은 미술이 시대적 이념과 관련한 활동이었음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원근법’과 ‘고전주의’로 설명된다. 「예술에 대한 일곱 가지 답변의 역사」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에 이르면 외부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모방이 절정에 달한다. 바티칸에 위치한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에는 금방이라도 사람들이 뛰쳐나올 것 같은 생생한 입체감이 살아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은 대기 원근법이나 선 원근법 등을 통해 외부 세상에 대한 모방을 실제 외부 세상보다 더 완벽하게 이뤄냈다.

이와 더불어 르네상스는‘근원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sources)’는 표어 아래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본성과 삶에 관해 주목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 사조인 고전주의의 이론가들은 보편적인 자연의 질서를 모방하는 예술이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는 과학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이 시기 예술이란 규칙에 입각한 일종의 이성적인 활동이었고, 그림 또한 이성적인 규칙에 입각해 좋고 나쁨이 평가됐다. 이를 배경으로 당시 예술과 과학이 분리돼야 한다는 주장이 논의됐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근대 예술의 개념이 생겨났다.


△‘신은 죽지 않았다’…모더니즘으로 이어진 예술

18세기를 분수령으로 미학 이론은 근대기를 맞는다. 이 때 칸트는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주관적 감정으로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취미판단’ 등 미를 주관주의적으로 해석했다. 이와 같은 이론을 포함한 근대 미학은 오늘날 현대 미학으로 이어진다. 칸트 이후 두 세기에 걸친 현대미학은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현대의 예술과 미학」에 따르면 현대 미학은 도시화, 산업화, 서구사회의 변화 등을 배경으로 한다. 20세기 전반부 미술은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등으로 나타난다. 실험적인 이념들과 함께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더니티 개념은 20세기 전반부 미술가들의 실험정신을 유발했다. 야수주의 화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아내의 얼굴을 대담한 색채로 그리기도 했다. 이는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시작된 전통적인 명암법과 고유색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 이후의 현대 미술의 중심지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유럽의 중요 미술가들이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대거 이주했고, 미국에 이들을 창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젊은 미술가들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이 본격화한 19세기 중엽 이후 현대 미술의 주요 흐름을 구성했던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중에서 미국으로 계승된 것은 모더니즘인데, 이는 냉전시대를 겪으며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이 반영된 미국식 모더니즘으로 변형됐다. 이를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 작가 중 한 명인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은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구멍 뚫은 페인트통이나 물감을 머금은 붓을 흩뿌렸다. 그의 작품은 화면의 지정된 프레임 안에서 정교한 구성을 추구했던 유럽 회화의 정통을 벗어났다는 평을 받았다.

「미학강의」의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작가들은 그들의 실재적 작품을 보여주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에서 벗어나 현대의 예술이 이해하기 어려워 우리에게 회의적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러한 현대 예술이 회의적이나마 주목을 끈다는 점에서 현대 예술이 ‘위기의 예술’이 아닌 ‘기회의 예술’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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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강의
오병남 지음|서울대학교출판부|2003.7.15|582쪽|18,000원

이 책은 미학 연구방법의 차원에서 서구 미학이론의 역사를 조망한 미학 입문서다. 저자는 미학이 예술철학․예술학․비평철학으로 발전됐음을 확인하고, 근대적 형태의 미학은 근대적 사고의 소산이라고 정리했다. 이 책은 서구 미학의 기본 개념, 고대 예술의 개념, 근대미학의 기원과 귀결, 현대미학의 방법과 전개 등을 다룬다.


미학
김진엽, 하선규 지음|책세상|2007.4.20|586쪽|27,000원

이 책은 「한국 지식 지형도」의 시리즈 중 하나로 한국에서 서구 미학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된 1970년대 이후 국내 미학계의 연구 논문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저자는 고대 미와 예술에 대한 철학적 담론부터 예술의 이론적 연구 대상이 확대된 현대 미학까지 서구 미학의 흐름을 조망했다. 미학 연구의 주요 흐름을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큰 주제 영역을 설정해 총 4부 체제로 구성됐다. 저자는 이를 통해 현대 미학에 대한 반성과 전망에 보다 다양한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현대의 예술과 미학
미학대계간행회 지음|서울대학교출판부|2007.5.25|639쪽|21,000원

이 책은 미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역사적 접근, 미학에 대한 방법론적ㆍ개념적 접근을 통해 미학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미학대계」 시리즈 중 하나다. 제3권인 본서에서는 개별 예술 분야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미학의 문제들, 특히 현대 예술과 관련돼 생겨난 예술 현상과 이론의 새로운 쟁점들을 다뤘다. 더불어 현재와 미래의 미학을 주도할 새로운 동향들을 자유롭게 다루고 있다.


예술의 의미
허버트 리드 지음|박용숙 옮김|문예출판사|2007.02.20|317쪽|12,000원

저자는 예술의 원리와 예술 작품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예술을 안내하고 있다. 시인이며 문학․미술비평가인 저자는 직관과 감수성에 의해 조형하려는 예술가의 의지, 그리고 회화와 조각이 만들어지는 데 기본 요소들인 미, 조화, 패턴에 대한 개념을 다뤘다. 1부에서는 조형예술의 기본 원리를, 2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원시적 동굴 벽화에서 현대의 잭슨 폴록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양상을 역사적인 순서로 해석하고 있다. 3부에서는 예술가와 감상자, 예술가와 사회의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예술에 대한 일곱 가지 답변의 역사
김진엽 지음|책세상|2007.11.20|174쪽|13,000원

저자는 모방론, 진화심리 등 예술을 바라보는 7가지 관점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저자는 예술가 구보씨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내용을 전개한다. 이 책은 구보씨가 추상화가, 행위예술가 등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예술을 매개로 낡은 이론과 새로운 이론이 충돌하고 보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유의 역사를 보여준다. 저자는 예술을 대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저자가 제시한 일곱 가지 답변이 아니라 ‘나 자신의 답변’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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