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자일 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여자일 때와 아이들의 어머니일 때 밖에 없어요. 그 외의 경우에는 저는 하나의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인간으로서 사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거죠. 그래서 여사장, 남사장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 분비물이나 전혈 및 혈청으로 질병을 간단히 진단할 수 있는 ‘동물 질병 진단 키트’를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 수출하고 있는 베트올(Vetall) 김정미(생물학과, 86년 졸) 대표가 여성 창업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해외출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와 5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대표가 졸업 직후 바로 획기적인 창업 아이템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기술을 연구하는 ‘응용과학’에 특히 관심이 많아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물학과를 졸업했지만 질병에 관심이 많아 질병의 수사학이라고 할 수 있는 역학으로 타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았고, 배운 것을 응용할 수 있는 약대에 갔다. “연구하면서 논문 쓰는 것이 적성에 맞아 교수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IMF땐 취직도 안 됐고 심지어 생물학과, 역학과, 약대를 나와 전공이 일관적이지 못하다며 교수도 못했죠. 그 후 국립보건원에 1997년 입사하게 됐는데, 넘치는 의욕에 비해 정적인 공무원 생활은 저의 성격과 맞지 않았어요.”

김 대표는 그 길로 국립보건원을 나와 바이오벤쳐 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 개발한 것이 ‘자궁경부암 진단용 DNA칩’이였다. 회사에서 이미 기획해 연구가 진행된 상태에서 그는 총책임자로 영입돼 연구를 완성시켰다. 열정적으로 총괄한 결과, 자궁경부암 진단키트는 성공적으로 산업화됐다. “당시 다른 질병의 진단키트는 많이 개발된 반면 자궁경부암 진단키트는 생각보다 개발이 부진했어요. 세상의 절반이 여자고, 우리나라 여성들의 자궁경부암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발병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공략했죠.”

그는 연구소를 사직하고 들어간 회사에서도 여러 진단사업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진단키트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에게는 이미 10년간 축적된 진단키트에 대한 경험과 지식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총책임자는 연구뿐만 아니라 생산에도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저는 기술력과 영업력 모두를 익혔죠. 회사의 ‘소(小)사장’으로도 불리면서 자연스레 ‘나 혼자 사업해도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구원으로서 기술력은 자신이 있었고, 회사에서 같이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뛰어난 영업력’을 가진 동료가 창업을 도왔거든요.”

2006년 김 대표는 사업 아이템으로 반려동물 시장 고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동물 분야를 선택했다. 이미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사람 관련 분야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지만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리드할 수 있는 시장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반려동물 시장이에요. 연구자로서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가로서 영업력을 발휘하려면 숨은 시장을 잘 공략해야죠.”

기술력과 영업력 모두를 갖춘 베트올은 바이오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첫 해부터 매출을 올렸다. 회사가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으로서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던 배경에는 김 대표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창업하려는 회사가 제출한 연구과제의 사업성, 기술성, 수익성을 판단해 자금을 지원해주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지원 제도를 잘 이용하기도 했죠. 부담스런 연구비는 경기테크노파크나 중소기업청 등의 연구지원 사업에 지원하고 선정됨으로써 충당받기도 했어요. 또, 외부 교육프로그램을 직접 찾아 직원들이 교육훈련 받게 했죠.”

이러한 노력으로 베트올은 현재 99개국으로 상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동물 질병 진단 키트는 지식경제부가 향후 세계 5위 안에 들 것으로 예상하는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그는 2008년 제9회 여성창업경진대회에 회사 직원 8명과 함께 출전해 중소기업청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꿈꾸는 회사는 ‘세계일류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다. 현재 동물 질병 진단 키트는 세계 시장에서 반려동물시장이 좀 더 일찍 형성된 외국으로 수출되는데, 작년 총 매출의 93.5%가 수출을 차지할 만큼 해외 시장에 맞춘 제품을 더 생산하는 편이다. “99개국이면 거의 모든 나라에 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아직 전 세계적으로 동물 질병 진단 키트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수요는 일정해요. 그리스나 스페인 등 유럽 시장 경기가 침체해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어요. 심지어 그루지아 내전이 발생했을 때도, 그루지아에서 주문이 들어왔을 정도에요.”

김 대표는 이공계 여성들에게 성급하게 진로를 결정하지 말고 여유롭게 적성을 찾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공계는 회사 연구원, 교수, 약사, 의사 외에는 적당한 직업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직업군이 제한적이에요. 그러나 안정되고 좋은 직업만 갖고 싶어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제한되죠. 성급하게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생각해봐야 해요. 이것저것 하고 싶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면, 현재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직업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좋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 본인의 결정을 확고히 다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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