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 학기 ‘사진제작실습’을 수강하고 있다. 지난 화요일에도 사진을 찍으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 입구에 걸린 알록달록한 돼지저금통과 훌라후프도, 건물 한 구석에 놓인 빨간 소화기도 왠지 모르게 눈에 밟혀 자꾸만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이건 왜 찍는 거요?”하고 말을 걸어왔다. 작품의 의도를 묻는 질문이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들의 물음 뒤에는 필자가 ‘수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이 깔려 있었다. 문방구 옆 슈퍼아주머니의 눈길이 따가워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인터넷에 배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 드렸지만 아주머니는 ‘이런 거 찍으면 안 되는데….’하시며 끝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셨다. 소화기를 찍을 땐 경비원에게 ‘소방 방재청 직원’으로 몰려 쫓겨날 뻔하기도 했다.
미국의 미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그의 저서 '신뢰(Trust)'에서 사회적 자본으로서 신뢰를 선진사회의 필수 조건, 사회·정치적 발전과 안정 그리고 경제 발전의 절대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 사회적 거래를 촉진시키는 신뢰, 네트워크, 규범 등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무형자산을 말한다. 사회적 자본은 활발한 인간관계를 통해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을 촉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특히, 신뢰는 관용을 베풀게 하고, 낯선 사람에 대한 불필요한 경계심을 줄여주며, 정치·문화적 차이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마법이다. 공동체에서의 협동은 물론 타인을 위한 희생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집단 결속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갈등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비용도 줄여주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불신이 만연해 있다. 올해 2월 OECD가 발표한 ‘OECD 국가의 삶의 질 결정 요인 탐색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질은 전체 회원국 32개국 중 31위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만한가, 아니면 매우 조심해야 하는가?’, ‘마약중독자, AIDS 환자, 이민자, 동성애자, 종교가 다른 사람, 술주정뱅이가 이웃에 산다면 꺼림칙한가?’ 등의 질문으로 평가한 ‘사회 구성원 간 신뢰도’ 부문에서 특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지수는 더욱 심각하다. 세계적인 홍보기업 에델만이 올해 1월 발표한 25개국 대상 ‘에델만 신뢰도 지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정부 신뢰도는 작년 50%에서 올해 33%로 큰 폭으로 하락해 25개국 중 17위에 머물렀다. 알란 반더몰렌(Alan VanderMolen) 에델만 총괄대표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한국정부가 국민과 투명하게 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주요 정당 선거공약 분석 결과’에 따르면, 여야 정당의 19대 총선 공약이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 포퓰리즘 공약으로 분석됐다. 투명한 대화 대신 ‘눈가리고 아웅’식 표 몰이에 눈 먼 후보들은 아직 사회적 자본 확충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듯하다. 사회적 자본이 확충되지 않으면 경제적 성장도, 정치적 성숙도, 선진국 진입도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