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의 전통문학 정리한 김태준과 중국 문학가

김태준은 한국의 근대학문이 시작된 이후 가장 이른 시기에 우리의 근대적 문학사저술에 해당하는 『조선소설사』와 『조선한문학사』를 완성한 탁월한 국문학 연구자이다. 이 두 문학사 책은 오늘날에도 국문학연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필독서로 통하는데, 사실 김태준은 중국문학 전공자였다. 그는 1926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이어 1928년 본과로 진입, 중문과를 전공으로 선택하여 중국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였다.
1930년 여름, 졸업을 앞둔 김태준은 졸업논문을 집필하기 위해 자료 구입 차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 부근을 다녀오게 된다. 유리창은 고풍스런, 베이징의 대표적인 문화거리로서 청대부터 발달한 서점, 문방구, 화랑 등이 즐비한 곳이다. 김태준은 그때의 상황을 「외국문학 전공의 변(辯)」이라는 글에서 소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원명청 시대의 연문학(軟文學,희곡, 소설 등을 가리킴)의 개론적 지식을 얻을 겸 「명청희곡소사(明淸戱曲小史)」 같은 것을 졸업논문으로 하려 하였으나 같은 제목의 저술이 이미 나왔으므로 새로운 졸업논문 준비를 위해 베이징의 유리창 부근을 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베이징 답사는 김태준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는 중국에는 건설도상에 있는 신문학이 많다는 것, 중국문학 연구의 사명은 이 신문학의 수입과 소개번역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 정치와 문학을 일원(一元)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 등을 깨닫게 된 것이다. 베이징 답사는 김태준에게 학문연구의 어떤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는데, 그는 중국 신문학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의 새로운 학술성과를 목도함으로써 그 자극을 받아 조선의 전통문학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조선한문학사』의 결론에서 “만일 이 뒤로 중국문학이 수입된다면 그것은 물론 백화문학(白話文學)일 것이다.……낡은 것을 정리하고 새로 새 것을 배워서 신문화의 건설에 힘쓰자!”라고 강조한 데서 여실이 드러난다. 신문화 건설에 앞서 낡은 것을 정리하는 작업이 수순일 때, 중국문학 연구자이지만 김태준에겐 우리 문학을 정리하는 ‘조선소설사’와 ‘조선한문학사’의 서술이 급선무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중국 신문학 건설을 위해 문학혁명을 제창했던 후스(胡適)도 중국문학사 저술을 남겼고,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했던 루쉰(魯迅)도 중국소설사를 저술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후스는 문학혁명의 구호를 제기하여 문언문인 전통 고문을 폐기하고 언문일치의 구어체로 된 백화문학을 주창하였는데, 그는 백화문학의 당위성을 중국의 과거 문학 속에서 검증하기 위해 『백화문학사』(1928년)를 저술했다. 루쉰은 흩어져 있는 중국의 수많은 고소설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뒤 그 유명한 『중국소설사략』(1925년)을 저술했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몇몇 근대적 문학사저술이 이미 나와 있었는데, 중국문학 전공자로서 김태준은 베이징 답사를 통해 백화문학이 주류로 부상하여 중국 신문학을 구성하고 있으며 중국 고전문학을 정리한 근대적 학술성과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큰 자극을 받은 것이다. 김태준이 1930년 베이징을 다녀온 직후 그해 10월부터 동아일보에 중국 신문학을 소개한 「문학혁명 후의 중국문예관」(18회 연재)이라는 글을 연재하고, 동시에 역시 그해 10월부터 우리의 고전소설을 정리한 『조선소설사』(68회 연재)를 연재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듬해 12월에는 우리의 전통 한문학을 정리한 『조선한문학사』도 완성하여 출판했다.
따라서 한중 양국은 비슷한 시기에 근대적인 학술활동을 통해 자국의 전통문학을 정리한 근대적 문학사를 갖게 된 것이다. 김태준이 ‘조선소설사’와 ‘조선학문학사’를 쓸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그의 탁월한 개인적 능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중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었으므로 조윤제, 김재철, 이희승 등 다른 ‘조선어문학회’ 성원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전통문학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학은 한문학이 주류를 이루어왔고 중국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탓에 우리의 전통문학을 정리하는 데 한중 비교문학적 관점의 확보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태준은 『조선한문학사』의 「서론」에서 “중국민족의 정신적 유동을 볼 수 있는 문학은 오로지 중국 현대의 구어체인 백화(白話)에 있으므로 이제 고대의 문언체 시문(詩文)은 하나의 골동품을 구경하는 셈밖에 되지 않으며, 필자의 이 제목도 한낱 고전연구에 그친다”라고 언급하며 『조선한문학사』 저술이 중국 신문학운동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었다. 중국문학의 새로운 언어형식으로 확정된 백화문학의 입장에서 볼 때 문언체인 시문 중심의 고문문학은 이미 의미를 상실한 것이므로 그 모방인 조선한문학 역시 그 생명력을 다한 것이다. 김태준이 스스로 조선한문학사의 서술을 두고 ‘결산보고서’라고 단언한 것은 중국 신문학운동을 강하게 의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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