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정상회의, 우리도 한 몫 했죠.”
“핵안보정상회의, 우리도 한 몫 했죠.”
  • 이예진 기자
  • 승인 2012.0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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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스태프로 참여한 이화인을 만나다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핵안보정상회의)’가 3월26~27일 서울 코엑스(COEX)에서 열렸다. 전 세계 약50개 국가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이 참가해 테러집단으로부터 핵물질·시설을 방호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안보분야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다. 이번 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이화인들이 있었다. 이에 본지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동영상 기획부터 편집까지 담당한 ‘e-리포터’ 김보미(방영․10)씨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2012 Seoul Nuclear Security Summit> 26일부터 27일까지 미디어센터에서 모든 핵안보정상회의 관련 소식들이 전파된다니, 벌써부터 설레는 순간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e-리포터들도 이곳에서 발 빠른 소식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작년 11월부터 회의가 끝날 때까지 각종 블로그, SNS에 핵안보정상회의를 홍보하는 글, 사진, 동영상 등이 지속해서 게재됐다. 이 활동은 핵안보정상회의의 공식 민간인 홍보대사인 ‘E-리포터 60명의 노력물이다. 이 중 김씨는 22명의 우수단원 중 한 명으로 선발돼 회의 당일 미디어센터에서 취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e-리포터로 활동하게 된 이유로 전공을 살리고 싶은 마음과 일본에 살았던 경험에 있다고 꼽았다. 재작년 11월에 열린 G20 때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를 한 김씨는 통역을 위해 몇 시간 동안 한 공간에 있었던 적도 있어 활동적인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약10년간 일본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핵의 위험성에 대해 더 와 닿았어요. 오늘날 비국가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목적만을 위해 핵을 사용했을 때 무서운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 회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SNS,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 동영상과 글로 대외적으로 일반인들에게 핵안보정상회의의 관심을 촉구하려 노력했다. 그는 리포터를 하는 동안 자신의 유튜브 채널(youtube.com/thebmkim)에 회의와 관련된 동영상 35개를 올렸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 핵안보정상회의에 관련된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또한 리포터들이 춤추며 핵안보정상회의를 소개하는 노래 등 리포터들의 활동을 담은 UCC를 만들기도 했다.
 그가 e-리포터 중 유일하게 동영상팀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촬영, 기획, 편집 등을 혼자서 해내야만 했다.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취재하는데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회의 당일 미디어센터에서 김성환 장관, 이배용 전 총장 등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리포터 활동을 하면서 굉장히 다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또한 조희용 준비기획단 부단장님은 저희 리포터들이 취재를 가면 독려해주시고, 장관님께 ‘e-리포터들이니 잠깐만 인터뷰를 해달라’고 말씀해 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한 그는 이번 활동에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상을 좀 더 많이 찍을 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프라인 활동을 더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또한 제가 주로 리포터들의 활동에 대해 동영상을 찍었는데 핵안보의 개념을 좀 더 쉽게 풀이하는 영상 등은 제작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3월31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기획단을 위한 오찬에서 그는 리포터와 함께 ‘사마귀 유치원’을 패러디한 ‘핵안보 유치원’ 공연을 끝으로 공식 활동을 마친다. “이번 활동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앞으로 나를 어떻게 갈고 닦을지,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에 대해 생각해 볼 좋은 기회였어요.”
△김포공항 보안 분야 행사지원요원으로 일한 강물아(언홍영·12)씨
 “May I check your name?(이름을 확인해도 될까요?), You could use shuttle bus at this place.(이 장소에서 셔틀버스를 타실 수 있어요)”
 회의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계자들이 처음 한국을 맞이하는 공항에서 강물아씨는 이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비표스티커를 나눠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3월26~27일 오전7시~오후3시 김포공항에서 행사지원요원으로 일했다.
 강씨는 작년10월 지하철에서 핵안보정상회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행사지원요원을 지원했다. “당시는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몰랐어요. 단순히 아르바이트한다는 생각으로 지원했죠. 다행히 최소 나이 조건인 ‘93년생 이상’ 조건에 맞아 신청할 수 있었어요. 면접에 갔을 땐 정장을 입고 있는 언니·오빠들 사이에서 혼자 교복을 입고 있어 위축되기도 했어요.”
 1차 서류 면접이 통과된 후 2차 면접에서 그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분명히 표현해 합격했다. 또한 그는 영어로 본 면접에서 당당하게 말을 이어가고 ‘어떤 장소가 한국의 문화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면접관들이 ‘나이가 어린데 할 수 있겠냐’고 많이 물어보셨어요. 저는 이 경험이 추후 대학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꼭 하고 싶다고 강조했죠.”
 그는 업무를 위해 올해 2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교육을 받았다. 직무에 대해 다룬 두 번째 교육에서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외국인을 안내할 때 주의해야 할 매너, 행동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숙지했다.
 그는 공항에서 다양한 외국인을 마주칠 때마다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제가 맡은 역할이 크진 않지만 외국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에 힘들어도 티 내지 않고 웃으며, 바른 자세로 일했어요.”
 그는 이번 회의에서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활동 중 많은 외국인분들을 만났지만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불편했어요. 그래서 ‘영어가 좀 더 유창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또한 조금 더 오랫동안 활동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나중에 비슷한 기회가 생긴다면 활동기간이 긴 다른 역할을 맡고 싶어요.”

△ ‘미디어센터 매니저’ 변혜진(컴퓨터교육 석사․01년졸)씨
 “미디어센터 매니저 15명과 95명의 인력을 총괄하며, 정상회의 관련 자료와 프레스 패키지(우리나라를 알리고 여행에 도움이 되도록 소개된 책자)를 배포하는 역할을 했죠.” 변혜진씨는 회의 기간 각국 기자들에게 기사작성, 취재, 브리핑, 보도, 송출 등의 활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서비스를 제공한 미디어센터에서 일했다.
 미디어센터는 약50개국의 기자단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당황스러운 상황 또한 많았다. “한 TV기자가 비표도 없이 프레스 패키지를 줄 것을 요구하며 운영요원에게 성질을 부리며 책상을 내리쳤어요. 제가 가서 소속을 물어보니 자신이 한 행동이 창피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소속을 말하지 못하더라고요. 이러한 일부 우리나라 기자들의 예의 없는 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국제 행사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했던 그는 매니저로 선별된 작년 가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약7년간 교직 생활을 한 후 퇴직했기 때문에 국제 행사에 관한 정보나 이해가 없었어요. 그 후 가정에 집중하는 저에게 새로운 경험과 추억거리를 만들어 보라는 배우자의 권유로 지원하게 됐죠. 매니저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행사에 관한 이해와 핵 문제, 원자력 안전 문제에 대해 공부했어요. 그리고 나이 어린 요원들을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이끌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는 회의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를 미디어센터가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 10개 분과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던 점으로 꼽았다. “미디어센터는 단독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므로 타 분과에 대한 숙지가 되지 않으면 미디어센터가 원활히 운영될 수 없어요. 나 혼자, 내 분과만 잘한다고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는 이번 경험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성의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프레스 패키지의 여유가 생겨 기자 이외의 분들에게도 드렸어요. 받으시면서 고맙다며 샌드위치를 가져다준 경찰, 자신도 선물하겠다며 차를 갖고 온 보건소 관계자, 붓글씨로 프레스 패키지 운영인력들의 이름을 한자 한자 써주신 선생님 등은 모두 잊지 못할 분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