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도 학보사의 교수칼럼 기고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내가 하는 전공과 연관된 것으로 주문을 받았기에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을 알려주는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때도 인생의 황금기인 대학시절에 후회 없이 놀아볼 필요도 있다고 썼었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이글을 읽을 10학번 내외의 여러분은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을 것이니까 꽤나 시간이 흘렀지요.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젊음의 특권은 놀이수용”이라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나는 이화에 부임한 이래 마치 화원의 원예사가 화초와 생물들을 조심스럽게 기르고 관리하듯이 이화의 재학생을 지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잘 가르치고 싶어서 하늘에서 하는 스포츠를 제외한 온갖 종류의 동·하계 아웃도어 스포츠를 시도해봤고 좋은 기량을 갖추고자 노력했고 나름 성과도 있었습니다. 다 이화인 덕분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놀이거리가 더 많아졌다고나 할까요? 지금도 또 다른 종목을 시도하고자 하고 있고 언젠가는 학과목의 형태로 여러분께 제공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학교에서 온갖 실기만 지도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과목과 과제는 ‘여가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으로 개설되었던 과목을 가르치면서 있었습니다. 당시 과제중의 하나로 ‘체험 놀이의 현장’이란 타이틀의 과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보내는 방안을 창의 있게 강구하고 실제로 체험을 하고 그 과정을 정리하고 보고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과제를 해냈던 2학생의 과제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부산이 고향이었던 학생 1명은 같이 과제를 하는 친구와 함께 부산의 고향집까지 학교에서부터 일반버스만을 이용해서 도달하는 안을 짰고 결국 1박2일에 걸쳐 우리나라 국도를 휘졌고 다니며 온갖 고생과 궁상을 떨더니 결국 해내고 말았습니다. 느림의 여유와 미학을 그 과제를 통해 생각해봤고 우리나라 강산의 수려함도 느꼈고 끈끈한 동료애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비록 과제이기 때문에 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지만 나름 선택의 자유에 따른 레저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3~4시간이면 집에 갈 수 있는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방안을 택한 이들의 결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해줬었습니다. 당시 내 자신도 마음의 여유가 없이 허둥지둥 살아가고 있고 레저를 전공한 교수가 가장 레저의식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사회로 나가 각기 자신의 삶을 영위할 이 두 학생은 아마도 자신들의 삶을 재미있고 의미가 있게 꾸려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과거와는 달리 물리적 시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끔 되어있고, 레저행동양식도 정형화된 소비적 형태를 띠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처럼 자기 자신을 살찌울 수 있는 기회가 온 이 대학시절에 남이 하니깐 나도 하는 식이 아닌 정말 자신에게 맞고 개성이 있는 레저거리를 찾아봐야 합니다. 물론 찾고 난 다음에는 정열을 다해 여기에 미칠 정도로 애정을 쏟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많아야 된다고요? 저의 전공에서는 ‘레저 레퍼토리’라는 용어를 쓰지만, 인생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메뉴판이 있다면 이 메뉴판의 종류가 다양하면 나중에 이것저것 골라 쓸 수 있으니 여건이 닿으면 다양하게 접해보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대학 진학 후에 오는 정신적 시간적 자유를 정말 헛되게 보내면서 일종의 공황상태를 경험하는 학생들도 지켜본 적도 있었습니다. 입시위주의 교육 실태로 인하여 청소년이 스스로 놀 수 있는 방법을 정규교육 과정상 습득해 나오지 못하고 사회는 상업화된 레저소비를 독려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레저를 할 수 있거나 경험하는 방법을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이후에 습득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한 삼천여명의 여린 생물들이 이화동산의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5,000여 학우들은 나름 바쁘게 한 학기를 맞이하고 삽니다. 무엇이 그렇게 초조한지 다들 여유를 갖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듯한 모습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을 찾지 못하고 틀에 박힌 삶을 꾸려가는 이화인을 볼 때 몹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원예사가 화초를 돌보는 심정으로 또 다시 한 해를 보내면서 젊은 이화인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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