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방에서 과제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 있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그렇게 높은 소리를 내며 웃는 걸 들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서 “엄마~ 뭐가 그렇게 재밌어?”라고 물으니 엄마는 런닝맨을 보면서 웃고 있다고 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어 엄마”라고 내뱉으려다 순간 멈칫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20년 넘게, 이름을 잃고 ‘엄마’로 살아온 우리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크게 웃고 있었다.
좋은 친구, 좋은 후배, 좋은 제자, 좋은 여자친구였는가? 라고 자문한다면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좋은 딸은 아니었다. 큰 소리로 웃고 있는 엄마를 갑자기 낯설게 느끼면서 ‘좋은 딸’이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의 대답은 부끄럽게도 ‘아니오’였다. 주위 어른들에게 예의바른 딸이었고, 혼자서 척척 해내는 똘똘한 딸이었지만 엄마의 곁을 지켜 주며 동반자가 되어 주는 좋은 딸은 되지 못했었다. 부모의 가슴에 박은 못은 빼낼 수 있어도 못자국은 남는다고 했다. 짜증스러운 말로, 엄마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로 엄마의 마음에 못 박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었던 것 같아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독자들 중에도 지난 일들을 후회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글을 읽으며 반성을 하고서는 또 오늘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 대신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싶을 때에도 밖에서처럼 상냥하게 웃어주고 배려하자. 엄마의 말에 반박하고 짜증을 내는 대신, 그렇게 ‘좋은 딸’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보다 가슴을 절절히 치는 노희경 작가의 말로 끝을 맺고 싶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 자식이 철들 때까지만 부디,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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