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자정에서 토요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필자를 비롯한 본지 기자들은 다음 주 월요일에 발간될 학보를 마감하는 데 여념이 없다.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모니터를 통해 쓴 기사를 들여다보다가 고치고 고치기를 수십 번, 기사를 지면으로 인쇄해 오‧탈자를 찾아내고 기사에 어떤 제목을 붙일지 고민한다. 네모난 지면 안에 기사를 채워 넣고 보면 이 단순한 레이아웃 속에 이화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본지 이번 호에는 취직하고 난 뒤에 새로운 진로를 찾은 이화인의 이야기가 실렸다. 필자는 이 원고들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문득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의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필자의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다. 보통 어렸을 적 여자아이들의 꿈은 선생님, 남자아이들의 꿈은 축구선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교실 뒤편에 있는 사물함, 그 주인 이름 밑에 적혀 있는 장래희망들은 대개 그랬다. 선생님, 축구선수, 요리사, 대통령…. 여기에 21세기적 직업의 다양성을 더해 가끔은 프로게이머, 디자이너 등도 있었다. 그때로부터 10년 정도가 흐른 지금, 필자는 사물함에 붙어 있던 빛바랜 이름표만큼 우리의 꿈도 바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빛바랜 장래희망이 아닌 빛나는 꿈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 꿈을 꾸고 춤을 추는 그들의 이야기가 네모난 지면의 레이아웃을 화사하게 물들였다. 박사랑(국문‧08년졸)씨의 장래희망은 소설가였다. 그는 9살 때부터 쭉 소설가를 꿈꿔왔다. 양시정(정외‧95년졸)씨는 대기업에 다니다 재즈댄스를 배우고는 “춤을 추고 싶어서 못 견디겠다”며 돌연 뉴욕으로 떠났다. 박씨는 ‘2012 문예중앙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해 그동안 꿈꿔왔던 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양씨는 서울국제모터쇼 등 여러 무대에서 쉴 새 없이 공연하고 안무를 만드는 재즈댄스 강사로 춤을 추고 있다.
  재작년 필자가 한 중학교에서 ‘방과 후 멘토링 수업’의 방과 후 수업 교사로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의 이야기다. 영어 수업을 담당했던 필자는 아이들에게 모의고사 시험지를 나눠 주고 풀게 했다.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시간에 교실을 둘러보던 필자는 아이들이 독후감 등을 쓰는 노트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알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그 노트를 살짝 펼쳐봤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노트를 집어 휘리릭 넘기는데, 좌우명을 쓰는 칸에 단지 네 글자만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바로 지금.’ 순간 그 네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울컥, 하며 뭔지 모를 것이 마음에 차오르기까지 했다.
  마감을 마무리하면서 필자가 쓴 기사의 원고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행여 실수가 생길까 봐 빠르게 훑어 내려가지도 못했다. 흔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라고들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우리는 속도와 능력을 중시하는 현대에 누구보다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과 이 늦은 걸음을 재촉해야겠다는 조급함에 숨이 가빠질 때가 있다. 이때 본지의 레이아웃 안에서 이화의 선배들이 말한다. ‘꿈을 꿔, 춤을 춰, 바로 지금.’
  남들보다 느릿해도 괜찮다. 내비게이션이 정해준 지름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가는 시간을 붙잡아 ‘지금’ 꿈을 꾸는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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