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문학과 한국인(4)>
<중국현대문학과 한국인(4)>
  • 이대학보
  • 승인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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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뿌리에서 세련미 꽃피운 장아이링과 최승희

주지하듯이 최승희는 일제시기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한국의 무용수다. “얇은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서 나빌레라……두볼에 흐르는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고 노래했던 시인 조지훈의 「승무(僧舞)」도 최승희의 춤이 동기가 되지 않았던가. 그녀는 열여섯 나이에 이시비 바쿠(石井漠)의 무용에 충격을 받아 그의 연구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현대무용을 배웠다. 조선으로 귀국한 최승희는 점차 현대무용 수법을 바탕으로 조선의 민속을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조선춤의 현대화로 예술방향을 바꾸어 민속적인 소재로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살인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최승희는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미국을 비롯한 유럽 및 중남미 각국 순회공연에서 명성을 얻으며 ‘동양의 환상’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그 후 그녀는 동양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창작활동에 매진하게 되는데, 중국 상하이 공연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었다. 그녀가 예의 좌담회에서 “중국에는 중국적인 형식의 춤이 있고, 일본은 일본적인 토속 춤이 있고, 조선에는 조선의 춤이 있지만, 동양 전체를 대표할 만한 무용은 없어요. 그러니 저는 동양을 대표할 만한 무용을 연구할 수 있기를 바래요.”라고 하면서 “동양 각 민족의 무예(舞藝)의 교량이 될 것을 희망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최승희의 동양적인 춤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오리엔탈리즘 지향의 예술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조선춤과 동양적인 춤의 완성은 전통에 대한 자각과 그 특유의 예술적 재능에서 비롯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승희의 춤은 표층적인 오리엔탈리즘에 그치고 있다거나 정신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도 있지만, 그녀는 새로운 이념과 형식을 갖춘 조선춤을 창조하여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켜내었으니 그 가치는 누구도 부인키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최승희는 조선적 양식 내지 동양적 양식과 현대적 양식을 결합하여 새로운 형식의 조선춤, 나아가 동양적인 춤을 창조하는 데 큰 공적을 이룩한 것이다. 게다가 「최승희의 두 번째 상하이 방문기」에서 “올해(1945년) 베이징에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중국학생들을 가르치고 동양무용예술의 부활을 떠맡고 있다”라고 최승희를 소개하고 있듯이 그녀는 중국무용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럼 장아이링도 최승희와 비교될 수 있을까? 장아이링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미국인이 세운 학교를 졸업하고 영어로 수업하는 홍콩대학에 유학하는 등 철저하게 서구식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세계는 세련된 현대적 기법을 구사하면서도 인생태도와 창작방법 면에서는 중국의 전통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려 중국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홍루몽』과 『수호전』을 『전쟁과 평화』보다 더 훌륭하다고 평가하기도 한 장아이링은 “『홍루몽』과 『금병매』는 자신에게 모든 것의 원천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최승희와 장아이링은 각기 무용과 문학에서 동일하게 전통문화에 뿌리를 내려 조선적 양식과 정서, 중국적 양식과 정서를 현대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것이다. 그들은 서양적인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마침내 동양적인 것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자신만의 창조적이고 독특한 춤과 문학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제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장아이링의 문학세계를 좀더 깊이 있게 다루어 보자. 장아이링은 “사람은 연애를 할 때가 전쟁이나 혁명 때보다 훨씬 소박하고 더욱 자유롭다고 여긴다”라고 했듯이 그녀는 전쟁이나 혁명보다 개인의 삶이나 남녀 간의 애정문제를 소설에 담아냈다. 그래서 「경성지련」, 「붉은 장미 흰 장미」 등이 실려 있는 장아이링의 대표소설집 『전기(傳奇)』에는 시대와 민족의 대서사가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평범한 인물들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대서사는 오히려 소서사를 이끌어내는 우연적인 요인으로만 작용할 뿐이다. 장아이링은 남녀애정과 혼인문제를 둘러싼 개인의 삶의 무게를 다루며 이상과 의지가 충만하던 시대에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평범한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과 그 욕망의 허망함을 세련되고 절실한 언어로 표현해내었다. ‘색, 계’에서 ‘색’이 인간의 욕망을 표상한다는 것은 익히 알겠지만, ‘계(戒)’가 ‘경계하다’라는 뜻뿐만 아니라 반지[戒指]의 뜻도 포함하고 있어 그것조차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장아이링의 문학에는 인간의 고독하고 슬픈 기억이 스며있으며, 그것은 역사의 반복과 순환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장아이링의 문학세계가 큰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그녀의 세련되고 원숙한 표현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조건을 탐문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홍석표 교수(중어중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