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빙교수로 ‘국제구호와 개발협력’강의 맡은 한비야 교수를 만나다

“약80명의 제자는 저에게 첫사랑이에요. 교수로서 만난 첫 학생이고 현재 내 시간과 마음을 그들에게 쏟아 붓고 있으니까요. 겨우 두 번 수업 했을 뿐인데 벌써 종강 생각에 아쉬워요.”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 교수(국제학과)가 본교 강단에 섰다. 그는 이번 학기에 일반 교양과목 ‘국제구호와 개발협력’ 강의를 맡아 7일 정식교수로서 첫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 바보’를 자청하는 그를 15일 국제교육관 802-1호에서 만났다.

지금까지 채플 강연, 리더십 특강 등을 해온 한 교수가 정식교수로 수업 하게 된 데에는 본교 국제대학원 김은미 원장의 영향이 컸다. 그는 김 원장과 국가개발협력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하며 친분을 쌓았다.

“김 원장님이 3년 전부터 저에게 초빙교수로 재직해달라고 하셨어요. 마침 유엔(UN)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3년을 한국에서 보낼 기회가 생겨 무엇을 할까 고민했죠. 여러 대학에서 함께 일하자며 제안을 해 왔는데 원장님의 간곡한 부탁에 감동해 이화여대 강단에 서게 됐어요.”
 
그는 원래 긴장을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첫 수업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교수로서의 첫 도전이 긴장됐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김은미 원장에게 수업자료(PPT) 만드는 방법, 학생들 점수를 매기는 방법 등에 대해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김 원장은 그에게 ‘PPT를 너무 자세히 만들면 학생들이 필기하지 않고 집중력이 낮아진다’, ‘과제가 너무 많다’ 등의 조언을 했다.

“첫 수업이라 긴장도 됐지만 이제는 학생들과 연애하는 기분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 앞에 서요. 가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즐거움으로 다가오죠. 지난주에는 수업 준비를 하다가 피로로 눈이 너무 따가워서 10분만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다가도 학생들 만날 설렘에 아픈 것도 잊게 되더라고요.”

그는 첫 수업시간에 난민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을 강의실에 걸어놓고 주전자, 돗자리 등의 구호물품을 앞쪽에 진열해놓기도 했다. 50분 동안의 강의가 진행된 후, 그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파견근무 때 입는 ‘구호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강의실로 들어왔다.

“구호가 무엇인지 PPT로만 설명하면 학생들이 구호에 대해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들이 관련 물품들을 직접 보고 구호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게 하려고 제가 생각해낸 방법이죠.”

그는 이날 자신을 신기해하는 학생들의 눈빛을 느꼈다. 오래전부터 좋아해 온 명사나 멘토를 만난듯한 학생들의 상기된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수업부터는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학생들의 얼굴에는 TV에서 혹은 책에서 본 사람을 만난 설렘이 가득했죠. 두 번째 시간부터는 그런 흥분은 사라지고 학문을 배울 준비가 되어있는 학생의 진지함이 묻어났어요. 저를 지식을 전달하는 교수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학생들에게 ‘난민촌 24시’라는 과제를 내기도 했다. 이는 학생들이 2L의 물과 미숫가루 한 봉지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과제다. 잠도 담요 한 장을 덮고 맨바닥에서 자야 한다.

“앞으로는 팀을 짜서 정부, 국제기구, 난민 지도자, 반군 지도자 등을 개인별로 맡아 직접 구호 상황을 연출하는 수업도 할 계획이에요. 역할극을 통해 학생들이 난민의 절실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요.”

국내에서 ‘국제구호’와 ‘국제 개발’이 묶여 하나의 강의로 개설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구호와 개발이 만나 한 수업으로 꾸려진 것을 ‘실험적’이라고 했다. 6월부터 다시 구호 현장으로 떠나야 하는 그의 일정 탓에 수업은 ‘국제구호’(7일~4월25일)‧‘빈곤과 국제개발협력’(5월2일~6월25일)으로 나뉘었다. 촉박한 일정임에도 수업을 나눠서까지 강의를 맡은 건 개발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제대로 된 구호를 할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이 담겼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수반되는 떨림을 실컷 맛봤어요. 현장에서 일했던 9년간의 이야기가 학생에게 잘 전달될지 걱정되기도 했고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다는 느낌까지 더해져 눈 덮인 벌판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는 심정이었어요.”

그의 수업은 오전 8시에 시작한다. 그가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에 다소 이를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한 이유는 학생들이 의지를 갖고 수업을 들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수업시간을 오전8시나 오후2시 중에 고를 수 있었어요. 오후2시는 학생들이 강의에 대한 특별한 마음가짐 없이도 그냥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싫더라고요. 정말 이 수업을 듣고자 하는 학생들만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8시로 정했어요. 그런데 수업에 늦는 학생들도 별로 없고 어떤 학생은 30분 전부터 미리 와서 앉아있더라고요.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는 이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길 기대한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약자에게 무언가를 공급하는 강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봤겠죠. 이제는 지금 당장 도움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는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봤으면 해요. 또한 ‘나’가 아닌 ‘우리’를 먼저 생각하길 바라요. 학생들이 ‘우리’의 범위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넓히고 재난을 당한 사람도 ‘우리’의 범위에 포함되는 세상을 구상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현재 교수직 외에도 국가개발협력위원회 자문위원,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등을 맡고 있다. 틈틈이 「좋은 생각」등 잡지와 신문에 글을 연재하기도 한다. 워낙 바쁜 탓에 일주일에 2~3일은 꼬박 밤을 새운다. 특히 수업이 있는 전날 밤이면 수업 준비를 위해 단 한숨도 자지 않는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전공수업도 아닌 교양수업을 위해 수요일 아침 일찍부터 수업을 들어요. 그들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인지 잘 알고 있어요. 1분도 아낌없이 가르치려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나의 지식과 경험을 그들에게 다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꼼꼼히 준비하죠.”

그는 교수로서 9년 동안의 현장 경험과 유학시절의 배움을 정리한 후 ‘현장의 언어’를 ‘학교의 언어’로 번역해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2009년부터 2년 동안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Tufts University)에서 인도적 지원 석사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교수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고 의미도 있어요. 저의 한계를 넓혀가는 기쁨도 있고요. 하지만 교수는 저의 현장의 경험과 지식을 정리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으로 제 꿈을 펼치기 위한 하나의 단계에요. 앞으로 제가 교수를 통해 또 무언가를 해낼지 궁금해요.”

그는 이화인에게 자신의 꿈에 도전하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배가 바다로 나가면 거친 파도도 만나고 위험한 폭풍도 만날 수 있어요. 그래야 노련한 사공이 됩니다. 아무것도 만나지 않고 싶다면 그냥 항구에 있으면 돼요. 하지만 매서운 파도와 폭풍을 겪는 건 대학생의 특권입니다. 매 순간 거친 파도나 위험한 폭풍에 도전하세요. 도전으로 여러분이 더 단단해지길 바랍니다.”

 

정새미 기자 semi0809@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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