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운동성과물의 전문성 위해 변화돼야

연속기획을 마치며 「운동의 과학화」와 「과학의 운동화」의 변증법적인 결합이라는 주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학술운동이 1991년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자리하고 있는가. 이번 학기 학보의 연속 기획물 「학술운동 어디까지 왔나」는 바로 학술운동의 분야별 사적인 접근을 통해 현시기 학술운동의 현황을 살핌으로써 전환기에 연구자들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자 시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각연구소활동의 평가와 더불어 제기한 문제들-구체적인 연구성과물 부족, 성과물의 검증통로 마련, 재정의 확보-과 자연과학분야의 학술운동 정립과정 및 민족과학 기술운동론의 제기등은 아직까지 학술운동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마련했고, 또한 정체된 연구자들에게는 자기의 위치를 반성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보여진다.

이번 기획물을 통해 결론적으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급격하고도 새로운 국내외적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학술운동의 주체인 연구자들의 자기위상 재정립과 그리고 연구자 조직의 정비와 활성화라는 부분들이다.

이제 다시 문제는 연구자들 스스로에게 반환되는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현시기 학술연구자들이 검토해야 할 부분들에 대한 지적과 학술운동의 중심축이 될 대학원운동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당면한 문제 현재 기존의 학술운동은 커다란 2차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마르크스·레닌적 관점이 무엇이며 정세의 급변속에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쉽게 결정되지 않는 지점에 처해있다.

또 하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써 어떻게 자신의 삶 즉 경제적 문제를 꾸리면서 계속 공부를 해 갈 것인가하는 실제적인 문제가 눈앞에 닥쳐 있다.

85~87년 운동의 상승기에 이러한 문제는 구체적 운동의 발저넹 의해 추동될 수 있었으나, 운동이 하강하고 침체기간이 길어질수록 외부로부터 닥친 이념적 혼란과 내부적으로 싹튼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이 맞물리면서 삶의 문제가 더 한층 가중되었다.

진보적인 사상과 이론을 견지하는 사람과 조직이라도 일상의 자기 「삶」속에서 「실천」을 찾지않는다면 그것을 감히 「실천」이라 부를 수 없듯이, 우리 연구단체 및 학회활동역시 하루빨리 운동 상승기의 「관성」에서 벗어나야할 것이다.

학술운동을 내세우던 모든 단체에 부여되던 과제가 변화되고 있고 우리는 깊은 고민을 통해 이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방식은 지금 제기되고 있는 현실적 과제를 어떻게 내부적으로 정리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그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올바른 「입장」이 요구된다.

아직까지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진영의 힘은 강고하고 기존의 대립체제가 계급적 측면으로 발전되지 않고 있음을 숙연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대립의 축이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몰려가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다.

비록 모든 점에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과감하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할수 있는 유동성을 가지면서 과거 80년대에 비해 2배의 노력을 가해야만 80년대 쌓아놓은 토대를 버티어낼 수 있다.

강조되는 이데올로기투쟁 그것은 80년대를 꾸려온 선배들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밑으로부터 솟아오는 후배들의 과감한 비판과 요구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선배들은 또한 상황을 장기적으로 보면서 좀더 「이데올로기」투쟁이라는 측면에서 후배들을 확대 재생산 해나가고 지도적 역할을 담보 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이데올로기 투쟁이 강조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즉 학술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발전 수준에 조응하는 갖가지 형태의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이며, 그 생산된 지식은 계급사회에서 단순히 지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술활동에 종사하는 대다수는 결국 석·박사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이 될것이므로 아직은 예비지식의 생산자로서 매움의 과정에 있는 후배들을 키울 선배들 간의 합의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때 비로소 연구자활동에 의한 학술운동의 자리매김이 제대로 잡혀갈 수 있다.

학술운동 전반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특히 자본의 요구에 부응한 대학원과정의 팽창에 따른 대학원생들의 양적 증가라고 하는 학내문제에 눈을 돌리게한다.

앞서 기획물에서 지적했듯이 과거 학술운동은 먼저 인문사회계열에서 「학원」(학내)과는 별개로 시작되었다.

80년 광주항쟁체험의 교훈이 무엇보다도 운동의 과학적 접근을 요구하였고 가장 올바른 전략과 전술을 사고하면서 운동대열과 하계에서는 저마다 과학적 접근법(과학운동)에 근거하여 논쟁이 시작되었으며 그과정에서 과학성의 담보와 동시에 학술운동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요구되었다.

즉 사회구성체 논쟁이 1차적으로 정리되면서 항상적인 학술운동이 제기되고 이에따라 현실운동에 적응하지 못한채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대학원에 온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상설적인 학술단체들이 다수 생기게 되었다.

대학원생 중심의 상설적 학술단체 증가 이·공계의 경우는 사회에 진출한 전문 연구자집단들이 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투쟁을 경험하면서 「과학기술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고 이에 자극되어 대학원에서도 과학기술자 운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결국 학술운동이 주로 이데올로기투쟁을 담당하고 이것을 보다 많은 대중들 특히 학술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이 그목적이라고 할때 자연히 학술운동의 또다른 중요한 기반으로 대학원운동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부각되게 된것이다.

실제적으로 대학원 운동은 외부에서의 학술단체 활동과 병행되면서 87년이후 타 대학에서는 독특한 자신의 위상을 정립해왔다.

일례로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의 경우, 대학원 자치활동이 대단히 활성화되어 정치적 실천의 조직화나 권익 복지실현과 함께 학술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과별 학회를 진행시켜 학술제나 심포지움, 토론회를 정기적으로 진행시키거나 혹은 학회연합을 결성 대중조직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기초교양강좌를 개설해 공통거리를 마련, 진보적 연구의 토대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학술운동의 중심이 대학원이라는 장으로 이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교의 경우, 87년 초부터 과거의 자치조직을 학생회로 명칭 변견하고 각과단위의 학회를 조직하거나 회보 발간 등을 통해 그 운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실제 지금까지 정립된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학원은 이데올로기투쟁을 위한 조직적 활동의 물적 토대 마련에 가장 중요한 힘들이 결집된 곳이다.

또한 그 공식성의 역량을 기초로 삶의 기반 역시 준비될 수 있고, 학술운동의 생산물을 배출하기 위한 예비단계로서, 전문성을 위해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곳이다.

보수와 안주의 벽을 깨고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본교 대학원에서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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