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저명한 음악가가 이 세상을 떠나 저승에 갔는데 가서 보니 거기에도 오케스트라가 있더란다. 앞줄에서는 바흐 헨델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열심히 연주하고 있었고, 신참인 그는 맨 뒷줄에 앉아 눈치를 봐가며 연주를 하였다. 눈을 감고 도취된 상태에서 지휘하고 있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문득 궁금해져서 옆에 있는 동료에게 물었다. 대답인즉 “아, 저분은 하느님이신데 자기가 카라얀인줄 아셔.  (He is only God, but he thinks he is Karajan.)”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크다. 

   ‘오케스트라’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합주형식의 악기의 형태는 16세기경의 파리나 런던의 궁정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그 이후 이런 형식이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의 관현악형태로까지 변모하게 되었다. 그러한 관현악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확장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바로크 시대의 오케스트라는 제1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이루어지는 현악 5부로 이루어진 현악합주 중심이었지만 하이든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현악에 오보 호른 등의 관악기가 더해졌다. 하이든 후기 베토벤 초기 교향곡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현악기 외에 각각 두 대 씩의 다양한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들 또 음정 조절이 가능한 타악기인 팀파니가 가지런히 짝을 맞춘 2관 편성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곡의 규모가 커지면서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이 늘어나게 되고 관현악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기에 이른다. 기존의 악기편성에다 피콜로, 잉글리쉬 호른, 베이스 크라리넷 등의 자매악기가 가세한 삼관편성을 거쳐서 19세기 후반이 되면 약 120명의 관현악 단원으로 구성된 4관 편성의 대관현악단이 그 위용을 들어내게 된다.

   그러면 오케스트라가 그 발생지인 유럽을 넘어 시간이 갈수록 전 세계에로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의 애호를 받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로 대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위해 작곡한 아름다운 명곡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그 곡을 훌륭하게 지휘해낸 명지휘자들과, 훌륭한 음악가들로 구성된 명교향악단의 연주가 없었다면 관현악이 결코 지금처럼 눈부시게 발전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음악적인 조건 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관현악이 지니는 상징성과 철학이 아닐까 싶다. 

   관현악은 하나의 축소된 사회다. 리더인 지휘자의 지휘 아래 연주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서로의 음을 맞춰가며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현상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오케스트라는 우리가 꿈꾸는 어떤 이상적인 사회의 축소판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나는 지휘자로서 관현악단의 모든 단원 개개인이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다른 부분에서 연주가 다 잘 되었어도 전체 곡에서 단 한번 나오는 심벌즈나 트라이앵글을 안치거나 잘못 치는 경우에는 그 연주 전체가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좋은 리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지휘자나 악장의 능력이 성공적인 연주를 이끌어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관현악 연주는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진 중요한 고유의 역할이 있고 그 임무가 각각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을 때에만 좋은 연주가 이루어질 수 있으니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지휘자의 어려움이 있다. 지휘자는 그 모든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연주에 임하게 되며, 그만큼 마음의 부담이 큰 자리이다.

   매년 4월 예술의 전당에서는 교향악 축제가 열린다. 전국의 교향악단을 초청하여 3-4 주에 걸쳐 열리는 전통 깊은 관현악 잔치로, 올해로 24회 째를 맞는다. 항상 국내외의 직업적 교향악단만을 중심으로 열리던 축제에 올해에는 이화여대 관현악단이 한국 예술 종합학교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학생 오케스트라로서는 최초로 초청을 받았다.  

   우리나라 음악대학으로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의 오케스트라는 이번 축제에서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을 나의 지휘로 4월 16일에 연주하게 된다. 이화인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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