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과 우수를 지나 어느새 만물이 깨어나고 벌레가 운다는 경칩도 지났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겨울잠을 깬다.’ 라는 말이 있듯이 약동하는 봄의 생명력은 어느 때 보다도 힘차다. 동시에 지난 일을 매듭짓고 어떤 일이든 새로이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마음의 온기가 불어오는 때이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심신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에 새로운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는 시기인 것이다.

 가을처럼 청명한 하늘이었던 2월, 하얀 리본을 목에 매고 가족과 함께하는 이화의 졸업생들은 누구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1년 동안 교육 봉사를 하면서 마주쳤던 선생님은 2월의 수업을 마지막으로 꽃다발과 함께 아쉬움의 눈물을 터트렸다. 학생들은 새 학년이 되는 순간을 설렘과 긴장감 속에서 맞이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은 봄이라는 계절에 해묵은 과거에서 벗어나 각각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도약과 변화를 위한 과정을 겪는다.
 
 봄 내음에 익숙해질 즈음 곧 만개할 꽃을 시기하는 추위가 불어 닥치고 추적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봄 한가운데 겨울이 얼룩지듯 변화의 과정이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자유라는 이름과 넓은 캠퍼스는 낯설기만 하다. 88만원 세대라는 멍에를 맨 사회 초년생들에게 사회는 가혹하기 짝이 없다.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취업 준비를 시작 하는 이들에게 취직의 벽은 높기만 하다. 변화에 온전하게 적응하는 것은 실로 쉽지 않다.

 변화의 초입에서 갑작스레 닥쳐오는 일들은 시련이고 고난이다. 게다가 새롭다는 것은 작든 크든 어느 정도의 두려움도 수반한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거칠 것 없는 이들일지라도 새로움에 적응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마음가짐과 행동이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변화의 상황에 부딪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생각보다 낯섦은 금방 익숙함으로 변한다. 조금만 인내를 가지면 변화의 과정에서 겪는 돌풍은 이내 잠잠해진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속의 화자인 ‘그’는 과거의 20대와 결별하며 30대를 시작하는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그동안 했던 모든 사소한 것들에 대해 새삼 생경함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그’는 흰 머리카락을 보고 생의 의지를 얻으면서 앞으로의 삶을 인정하게 된다. 이처럼 변화가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한다면 진정한 삶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바탕 불어 닥친 꽃샘추위는 봄을 더욱 그립게 만들고 봄비는 꽃이 싹을 틔울 자양분이 되듯이 변화가 수반하는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요인이다. 봄이 가져오는 새로운 바람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용기와 인내를 가진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지금 당장의 변화가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수도 있겠지만 이를 견뎌 낸다면 모르는 새에 훌쩍 여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조금 더 성장한 생기 넘치는 나의 모습이 존재할 것이다. 「삼십세」의 ‘그’가 외친다. ‘나는 진정 살아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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