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한번 존재하는 날, 이화인들을 포함한 몇몇 뜻있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새 학기를 맞이하는 캄보디아 유학생들을 위해 조촐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바로 전 날 한국에 처음 온 새내기 학부생, 힘겨운 대학원 공부 첫 일 년을 무사히 마치고 3학기에 들어서는 과학도와 교육학도, 학부를 지나 대학원에 접어들면서 한국어와 크메르어 동시통역이 가능해진 행정학도, 그리고 결혼을 했지만 더 큰 꿈을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외롭게 박사과정에 정진해야하는 기혼 유학생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선 이 땅에서, 한국어도 영어도 서툴지만 자기 전공의 높은 수준을 그 나라에서 배울 수 없어 한국 대학에 그 고생을 자처하고 온 사람들이다. 형편은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경제적으로도 결코 넉넉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장학금과 후원금, 그리고 스스로 벌어서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이다.

 글로벌시대의 한국이 다문화 가정, 이주 노동자에 이어 관심해야할 사람들이 바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 특히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 국가에서 어렵게 한국을 찾은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졸업 후 귀국하여 그 나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일들을 맡아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사람들이기에 한국 학교들에서 배우는 전공지식뿐 아니라 젊은 시절 경험하는 한국의 문화, 그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 사회를 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그들의 삶과 그들이 관여하는 그 나라의 전공분야들에 반영될 것이다. 우리 이화는 이미 2007년부터 EGPP (Ewha Global Partnership Program) 등의 공식적인 입학절차를 거쳐 “이화인”의 외연을 넓혀왔다. “여성이 무시당하고 소외되는 문화,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너무나 공부하고 싶은”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이라는 백이십년 전 이화의 정신을 따라서 말이다. 그 이후 이화 캠퍼스의 국제학생 글로벌지수는 높아가고 있다.

 이제 새 봄, 정신없는 학기 초이다. 한국 국적의 이화인들 틈에서 뒤늦은 등록금 납부와 수강 신청-철회를 반복하는 외국 국적의 이화인들이 있을 것이다. 언어교육원 학생들까지 포함하면 외국인 남학생 이화인들도 있다. 우리 다수의 한국인 이화인들은 이 소수의 비한국인 이화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처음엔 자신의 발등의 불끄기 바빠 전혀 그런 친구들에게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고, 굳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괜한 참견이 될까봐 눈길을 주지 않기도 할 것이다. 혹은 색다른 생김새와 특이한 말투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주기도 하며 서서히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화 안에는 어느덧 이러한 외국인 학생들을 돌보고 함께 공부하는 동아리 모임들도 생겨났다. 소수자들의 인권 앞에 몸부림치며 약자 보호에 앞장서는 ‘개념있는’ 이화인들이기에, 표심에 눈이 어두운 어른들의 피상적인 정책들과는 다르게, 진정한 지구촌 식구로 이화인 특유의 아름다운 관계들을 만들어 가리라 믿는다. 그러한 관계들의 진정성만이 글로벌시대를 살아내는 힘이라고 여겨진다.

 원조 받던 나라에서 반세기만에 원조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도 좋고, 한류를 따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친한파 인재들을 키워야한다는 주장도 틀리진 않다. 하지만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투자목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처음 마음먹었던 좋은 동기가 이기적 속셈으로 변질되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힘만 들고 결과는 자꾸 빗나간다. 사람사이에 있어야할 그 사랑이 식으면 아무리 최첨단의 기술과 제도가 멋스럽게 포장을 해주어도 서로 얼굴도 쳐다보기 싫은, 아예 모르고 지낸 사람보다 못한 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도와주는 척하는 것이나, 세계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 놓는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퇴색할 것이다.

 입학식에 외국 국적의 이화인도 함께 신입생 선서를 하고, 졸업식에 이름 석자가 아닌 열자를 넘는 이름의 학사, 석사, 박사가 배출되는 이화의 캠퍼스는 이미 다문화이다. 아니, 우리는 백이십여년 전 설립당시부터 다문화였다. 거목은커녕, 싹도 채 보이지 않았던 이화를 ‘진정한 조선인’으로 길러내기를 소원하셨던 파란 눈의 선생님들이 이화를 향해 품은 그 사랑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꽃 피는 이화의 새 봄을 부끄럽게 맞이하기 전, 밭을 기경하는 노력 없이 어쭙잖은 눈물로 엉뚱한 길가에 씨를 뿌리기 전, 오늘 그분들이 잠들어 계시는 양화진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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