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퍼즐, 리더
스펙, 퍼즐, 리더
  • 민병원 교수(정치외교학과)
  • 승인 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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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상담할 때마다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 불과 한 세대 차이련만, 지금 학생들의 능력은 학업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스펙’이라는 계량적 기준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학점, 어학능력, 해외교류 경험, 인턴 경험 등등 20∼30년 전에는 꿈꾸기 어려웠던 요건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 요즘 학생들이다. 대견하기도 하거니와 부럽기까지 하다.

이런 모습은 답안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원하는 ‘답’을 써내는 능력도 기가 막히다. 가르친 것보다도 더 잘 쓴다. 그런데도 졸업 후 취업전선이 치열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인재들이 너무 과잉투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정말 그런가? 이전 세대에 비해 지금 학생들이 지닌 개인적 역량은 분명 뛰어나지만 무언가 빠진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뭘까?

국제정치학의 한 분파인 코펜하겐학파는 ‘안보문제화(securitization)’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사회의 여러 현안 중에서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이슈가 ‘안보문제’로 떠오르게 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식량문제가 중요해지면 ‘식량안보’가 되고, 환경문제가 시급해지면 ‘환경안보’가 된다. 어떤 이슈이건 ‘안보문제’로 간주되면 다른 현안을 밀어내고 사회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그래서 사회의 온갖 자원이 그 이슈에 집중 투입된다. 그래서 사회적 이슈를 절박한 것으로 인식시켜서 안보문제로 비화하려는 시도들이 항시 존재한다.

이처럼 ‘안보문제화’의 개념은 정치과정이 사회적 어젠다를 설정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라는 점을 잘 드러낸다. 어느 시대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특정한 어젠다, 즉 사회적 퍼즐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지금의 학생들을 대하다보면, 이미 설정된 어젠다 속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자주 느낀다. 그런데 어젠다를 설정하기 위한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일까?

바로 여기에 차이가 있다. 고도로 높은 ‘스펙’을 가진 학생들이 사회적 어젠다를 인식하거나 제기하는 능력에서도 비슷하게 뛰어난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반비례하는 듯하다. 말하자면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서는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는 데는 둔감해 보인다. 개인의 역량, 즉 ‘스펙’을 기르는데 집중하느라, 사회의 어젠다, 즉 ‘퍼즐’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미처 다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펙은 계량화된 지표로 쉽게 드러나지만, 아쉽게도 퍼즐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쉽게 측정할 수 없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이 장소에서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그 존재론적 의문을 품지 못한다면, 애당초 이런 ‘퍼즐’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 세대 전에는 독재타도와 경제발전이라는 퍼즐을, 두 세대 전에는 전쟁이라는 퍼즐을, 세 세대 전에는 해방과 국가 건설이라는 퍼즐을 품고 살아왔다면, ‘스펙’으로 무장하고 있는 지금의 세대는 어떤 퍼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노력해서 쌓을 수 있는 스펙과 달리, 퍼즐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다른 사람과 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시대와 장소를 가로질러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로부터 합당성을 보장받는 일은 지금의 ‘스펙’ 지수 계산법으로는 결코 가늠할 수 없다. 대학은 스펙뿐 아니라 퍼즐을 만드는 능력도 길러 줄 의무가 있고, 이는 당연히 학생들이 요구해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친다. “학생들이여, 문제를 풀지만 말고 문제를 만들어라!” 그럼으로써 여러분들이 가진 능력과 스펙의 효과 배가될 것이다. 퍼즐을 구성하고 사회적 어젠다를 지배하는 자는 리더가 될 것이며, 스펙에만 몰두한다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어젠다 속에서 한갓 기술자로 안주하게 될 것이다.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내는 능력과 동시에 사회의 퍼즐을 만들어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 즉 ‘스펙’과 ‘퍼즐’을 모두 갖춘 리더가 그대들의 꿈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