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도핑검사 총괄한 박주희씨

1일(목) 남자 1천600m계주 준결승전이 한창인 대구운동장, 의족을 한 채 대회에 출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 오스카피스토리우스가 출발신호가 울리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경기 종료! 남아프리카공화국 2분59초21! 자국 신기록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끊이지 않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결승진출의 기쁨도 잠시, 그는 어떤 곳을 향해 달려갔다. 우사인 볼트, 요한 블레이크 등도 금메달을 딴 후 즉시 달려갔던 이곳은 바로 도핑 검사실이다. 6평 남짓한 공간에 그는 도핑 검사관과 함께 들어가 소변검사를 받은 후, 음성결과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국가신기록 또는 세계 신기록등을 공식 인정받는다.

8월27일~4일(토) 열린 대구육상선수권대회(대구육상대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선수를 대상으로 혈액도핑검사프로그램을 처음 실시하고 선수들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공식인증해주는 도핑 검사의 총책임자로 활약한 이화인이 있다. 국내 1호 국제도핑검사관(IDCO)이자 최연소 아시안올림픽평의회 도핑위원으로 활동 중인 도핑전문가 박주희(특수체육과 학사 국내 여성 1호 국제 휠체어농구 등급분류사(출전한 선수들의 장애정도를 보고 등급을 나눠 공정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직업)로 활약 중이던 그는 2007년 12월 장애인휠체어농구협회 추천으로 국내도핑검사관(DCO)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도핑검사관자격을 취득했다.

“자주 약을 복용해야하는 장애인들 중에는 금지약물인지 모르고 먹는 선수들이 많아요. 본교 대학원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한 덕분에 안타깝게 도핑 검사에서 자주 걸리는 장애인 선수들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었죠. 그래서 장애인휠체어농구협회에서 저를 도핑관리 프로그램에 추천해줘 도핑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이듬해 1월 박씨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 입사했다. 그는 2007년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를 시작으로, 장애인 및 일반대회, 프로대회, 전국체전 등 각종 경기에서 도핑 전문가로서 활동하다 2008년 10월 국내 최초 국제도핑 검사관이 됐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서 박씨의 도핑분야의 전분적인 활동과 외국어실력, 적극적인성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10월 발리 비치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광저우 아시안 게임, 벤쿠버 동계올림픽 등에서 한국을 대표한 국제도핑검사관으로 활약해왔다.

박씨는 작년 3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7개월 여간 대구육상대회의 반도핑 업무를 총괄했다. 그는 벤쿠버동계 올림픽을 마치자마자 바로 대구에 도착해 도핑 검사의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준비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과 직접 상대하며 도핑 관련 요구 사항에 따라 도핑 검사 장소를 선정 및 설계하고 진행순서를 구성했다.

또 그는 시료채취병 및 바늘 등이 담긴 혈액도핑키트 2500여개와 선수촌 사무실에 혈액분석기기 등을 설치하기도 했다. 임의적으로 선수를 선출해 도핑검사를 실시하던 기존의 대회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는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도핑 검사가 실시됐기 때문에 도핑기구의 종류의 양이 많고 종류가 다양했다. 도핑 검사에 대한 인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학생 40명을 도핑 검사관으로 선출해 교육시켰다.

이번 대회에서는 47개 종목, 2천여 명의 참가 선수가 도핑 검사를 받았다. 도핑 검사는 경기 전 ‘사전 검사’와 대회 기간 중 ‘사후 검사’로 나뉘는데 사전 검사는 채취한 혈액으로, 사후 검사는 소변 시료로 실시됐다.

박씨는 선수촌 내에 현장 혈액 분석실을 설치해 현장에서 채취된 혈액 시료를 곧바로 운반해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현장 혈액 분석은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는데, 세계적으로도 몇몇 국가나 국제연맹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최신 분석 방법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생체여권(Athlete Biological Passport)프로그램이 전 세계 최초로 실시돼 눈길을 끌었다. 생체여권은 이번 대회에서 채취한 선수들의 혈액과 소변샘플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번 경기를 포함해 앞으로 열릴 육상 경기의 도핑 검사 결과와 생체여권의 프로필을 비교해 선수들의 도핑 검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변동이나 이상이 있으면 도핑 여부를 적발한다. 생체여권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는 경기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이 검사관의 눈을 피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1천945명 모든 선수의 혈액을 채취하는 것은 어려웠어요. 좀 더 빠르고 수월하게 혈액을 채취하기 위해 대구 지역 임상병리사들을 선발하여 국제연맹과 함께 1년여 간 교육시켰죠. 그 노력 덕분인지 많은 선수들이 이제까지 받았던 혈액검사를 중 가장 편안했다고 얘기해주기도 했어요.”

그는 대구육상대회의 일정을 마무리 짓는 즉시 국제 무대에서 반도핑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7월14일 아시안올림픽평의회(OCA)는 대구육상대회 비롯하여 각종 국제대회의 도핑관리 분야에서 활동했던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해 반도핑 분과 위원으로 선임했다. 그는 앞으로 열리게 될 국제 대회에 참가해 도핑프로그램이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지 전문가 입장에서 확인하고 조언하게 된다.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2018년 평창 올림픽등에서 도핑분야에서 활동을 기대된다고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장애인 올림픽에서부터 아시안 게임 등 다수의 스포츠이벤트에 참가해 가까이에서 제가 좋아하는 경기를 보며 선수들의 열정과 페어플레이 정신 등을 느낄 수 있죠. 이런 자격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도핑관리의 큰 매력이죠. 새로운 제 일로 인해 더 많은 곳에서 도핑관리의 매력을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돼요.”

‘어디서든지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자’를생활신조로 삼고 있다는 박씨, 더 넓은 세계무대에서 공정한 경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핑전문가로 활약할 그의 미래가 기대된다.

이채린 기자 chearinle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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