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일간지에 ‘피터팬 신드롬’, ‘모라토리엄 인간’, ‘캥거루족’등의 용어로 불리는 ‘어른아이’가 증가하는 현상을 과보호적 자녀양육 측면에서 바라보는 기사가 소개된 적이 있다. 지면 한 쪽을 가득채운 기사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점차 부모역할의 본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아이는 신체적으로는 성숙하였으나 정신적으로는 성장기 발달과업을 적절히 완수하지 못한 상태의 미숙한 성인을 의미한다. 그 연령층이 20대나 30대라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남아있는 미래를 좀 더 성숙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대부분 언젠가는 부모가 될 20대 초반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예비 부모교육이 시급하다. 부모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부모가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에 근거한다. 인간은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다. 자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부모와 학대하는 부모에게서 자라나는 아동의 모습이 서로 얼마나 다를지는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성인으로 자라는 동안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랜 기간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어린 생명체를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귀중한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부모로서의 역할은 그 어느 역할 못지않게 고귀하다.

부모됨의 과정에서 부모가 겪는 어려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바로 모델로서의 역할이다.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생후 초기를 비롯해서 부모-자녀관계가 지속되는 한, 부모는 언어와 행동을 통해 자녀에게 줄곧 하나의 모델이 된다. 좋은 모델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다. 이미 굳어져 버린 부적절한 사고, 언어습관, 그리고 행동을 어느 날 갑자기 모범적인 모습으로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 교육은 부모가 된 이후보다는 부모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즉 예비 부모교육의 차원에서 강조되어야 한다. 졸업 후 결혼 이전까지의 시기나 결혼 후 자녀를 갖기 이전까지의 시기와 비교해 볼 때, 청소년기를 지나 이제 막 성인기에 진입한 시기는 예비 부모로서의 기본 자질을 좀 더 철저히 준비하기에 매우 적절하다.

예비 부모교육은 이론적 측면과 실제적 측면에서 행해질 수 있다. 이론적 측면에서, 인격체로서의 아동관, 아동발달, 그리고 아동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서의 유전과 환경의 역할 등에 관해 배워야 한다. 유전적 특성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면 환경의 개선을 통해 인간의 발달을 최적화시킬 수는 없는지, 근접환경으로서의 가족은 물론 교육기관이나 지역사회, 국가정책과 같은 가정 외 환경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등 인지적으로 학습해야 할 내용이 너무도많다. 실제적 측면에서 사회정서적 성숙을 위한 직접적, 간접적 경험이 필요하다. 다양한 클럽 활동, 사회봉사, 생활화된 독서 등 성인으로서의 건전한 사고와 정서, 그리고 행동을 습득하기 위한 자기훈련에 힘써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행동 가운데 하나는 바로 부모역할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지식 없이 부모가 되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동의 건강한 발달은 물론 부모 자신의 성인기 발달과업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맞벌이 가족의 증가가 예상되는 미래사회를 조망해 보건대, 좋은 부모역할을 통해 신뢰로운 부모-자녀관계를 형성하는 문제는 더욱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맞벌이 가족은 자녀양육에 투자할 에너지와 시간의 부족으로 외벌이 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양육환경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부모-자녀관계가 전제될 때, 가정과 일의 적절한 양립이 가능하고 나아가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의 시대에, 부모가 되는 것 자체가 선택사항이 되어가는 듯하다. 이론적으로 아동의 건강한 발달에 있어 다양성의 문제만큼 강조되는 것도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든 ‘부모됨’이라는 선택을 진정으로 권장하고 싶다. 가끔씩 나는 인간에게 부모-자녀관계가 마감되는 시점은 언제일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굳이 종교적 의미의 사후세계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부모와 자녀라는 존재는 각자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좋든 나쁘든 서로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지... 오늘도 나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의 애정 어린 음성을 들으며 나의 삶을 운전해 가고 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