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 탈북민 박사 이애란씨

“북한학과에서 북한의 의식주 생활 문화를 가르치고 싶어요. 그동안 이웃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죠.”

최초의 여성 탈북민 박사인 이애란(식품영양학 박사)씨가 본지와의 인터뷰 (2009년 3월9일자)에서 밝힌 말이다. 그로부터 약2년이 지난 8월31일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에 ‘능라전통음식문화평생교육원(능라교육원)’이 문을 열었다. 2008년에 개원한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의 부설기관인 능라교육원은 탈북민에게 북한 음식 조리법을 가르쳐주는 국내 최초의 탈북자 전문 직업대안학교다. 기자는 14일(수) 능라교육원에서 강의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애란씨를 만났다.

이씨는 2008년 9월부터 사단법인 북한전통 음식문화연구원을 설립해 원장을 맡고 있다. 8월에는 본인과 같은 배경을 가진 탈북민들에게 무료로 북한음식조리법을 가르쳐주는 능라교육원을 개원했다. 생계를 이어가는 것과 동시에 남북한의 언어차이로 고생하는 그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1997년 10월 한국에 온 이후 청소부, 보험설계사 일을 하며 어렵게 살림을 꾸렸고, 본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는 ‘언어의 장벽’으로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탈북민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남한말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요.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과 작업 현장에서 쓰는 용어가 다르기 때문이죠. 그들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대안학교가 그들의 남한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씨가 능라교육원에서 가르치는 요리반은 제면과정, 북한특선요리과정, 북한건강요리과정, 통일문화강사교육 등 약4개반이다. 수강생은 각 반에서 냉면, 해주비빔밥, 찬나물김치 등을 배울 수 있다. 16일(금) 기준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은 약50명 내외다. 탈북민들에게 국비로 수업을 제공하기 위한 승인을 받지 못해 탈북민은 아직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다.

탈북민의 남한 정착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수업이지만 남한 사람들에게도 능라교육원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한 사람들은 주로 창업을 목적으로 함흥·평양 냉면 등 북한 냉면조리법을 배우거나 북한음식에 대한 관심 때문에 능라교육원을 찾는다. 그 중에는 외국인이나 대학생들도 있다.

“연세대 학생들이 거의 매달 능라교육원에 찾아와 북한 음식을 배우고 가요. 지난 번에 방문한 미국 학생은 녹두지짐 떡(녹두를 갈아서 야채, 돼지고기, 김치를 넣고 기름에 지진 음식)을 만들더니 정말 맛있다고 했어요. 자기가 나중에 미국에 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할 거라고 레시피를 달라고 하기도 했죠.”

남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서 그가 얻는 보람은 색다르다. 음식을 통해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남한 학생들이 원래 전혀 관심 없던 북한 음식을 배우니까 북한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고 말했어요. 심지어 수업을들은 후 북한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조금 더들여다보게 된다고 했죠.”

능라교육원은 현재 탈북민들에게 국비로 수업을 제공하기 위안 승인을 받는 중이다. 내년에 승인이 나면 탈북민은 무료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에 맞춰 능라교육원이 운영하는 수업도 6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씨는 “예전에 많은 탈북민들이 음식점에 취직하기 위해 나를 찾아와 생활요리를 배운 뒤 자격증을 따고 음식점에 취직했다”며 “능라교육원에서도 탈북민들이 북한요리를 배우고 남한 사회에 잘 정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탈북민에게는 정착의 기회를, 남한 사람들에게는 북한 음식에 대한 추억을 선사하는 이씨. 그는 이 일이 본인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 말한다. 남보다 받은 게 많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탈북해 여기 사는 것, 공부한 것, 남들보다 좋은 직장을 가진 것 모두에 감사하며 살고있어요.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 곳을 단지 제가 맡아서 운영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일할 거에요.” 이씨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평양에 세계적인 요리 학교를 세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탈북민들에게 북한음식조리법을 가르쳐주는 과정에서 쌓인 교육 노하우를 갖고 나중에 평양에 세계적인 요리 학교를 세우고싶어요. 그때까지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이경은 기자 kelee3@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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