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커뮤니티 줌마네, 글쓰기로 아줌마 정체성 찾기

▲ 1일(목) 오후12시30분 동교동 고려삼 주차장에서 '산책하는 글쓰기' 수강생들은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 깔깔 웃으며 '촌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1일(목) 오후12시30분 마포구 동교동 고려삼 주차장에 수상한 아줌마 13명이 나타났다.

 “우리 공중부양 사진 찍자!”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주차장 벽을 배경으로 어설프게 뛴 공중부양 사진이 찍힌다. 아줌마들은 주차장 관리인의 눈총에도 굴하지 않고 깔깔 웃다가 다시 동교동 길을 걷는다. 모임 ‘줌마네’의 ‘산책하는 글쓰기’ 강좌 수강생들과 ‘줌마네’ 이숙경 대표다. 이날 산책하는 글쓰기는 오전10시~오후5시 연남동, 동교동에서 진행됐다.

 줌마네는 2001년 이 대표가 만든 모임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줌마네는 아줌마들이 글쓰기를 통해 삶을 기획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중 산책하는 글쓰기는 산책을 통해 소재를 발견하고 느낀 감상을 글로 표현하는 강좌다. 강좌는 매주 새로운 주제로 목요일 오전11시 이진아기념도서관, 금요일 오전10시 줌마네에서 2개 반으로 열리고 있다. 이날은 ‘옆 동네 산책―연남동과 홍대 앞 골목 탐험’을 주제로 산책했다.

 

△럭비공, 물귀신…서로의 별명을 부르며 함께 걷기

 줌마네의 회원들은 서로를 별명으로 부른다. 꼬리빗, 꽃바람, 나도밤나무, 놀자여사, 럭비공, 물귀신, 야한 초등학생을 줄인 야초, 없는 게 엄네(없네)의 엄네 등의 재미있는 별명 뒤에는 ‘언니’, ‘님’ 등의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 서로를 동등한 위치에서 대하기 위해서다. 제각각인 별명만큼이나 이들이 줌마네를 찾게 된 계기도 독특하다.

 3년간 줌마네에서 활동한 기획팀 엄네(경기도 평택시·43)씨는 11년간 정규직으로 근무한 대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회사를 그만 두고 7년간 경력단절에 빠져 있던 차에 줌마네를 접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데 갈 곳이 없었어요. 온라인에서 댓글 다는 것을 낙으로 삼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친구가 ‘너 글 쓰는 데 재능이 있다’며 줌마네를 추천해줬어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럭비공(서울시 서대문구·62)씨는 처음에 ‘산책하는 글쓰기’ 플랜카드의 ‘산책’이라는 단어만 보고 산책을 하는 모임인 줄 알고 줌마네 강좌에 왔다. 그는 “줌마네에서 쓴 글이 60년 평생 내가 처음으로 쓴 글이었다”고 말했다.

 모인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동네를 산책하며 글쓰기를 했다. 산책 중에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글쓰기 과제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8일(목) ‘나만을 위한 작은 책 출판 기념회’ 종강을 앞두고 그들은 자신이 강좌를 통해 겪은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레몬트리(서울시 서대문구·45)씨는 이 수업을 들으면 떠오르는 말이라며「행복한 동행」이란 책을 꺼냈다. 그는 “이전까지는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에 틀에 박힌 사고밖에 할 수 없었다”며 “직장을 그만 둔 후 여기 모인 사람들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수강생 중 패셔니스트로 꼽히는 물귀신(서울시 종로구·43)씨는 타인의 고정관념에 휩싸였던 경험을 말했다. 그는 “내게 보편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하며 염려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며 “타인에게서 굴레가 있던 나는 ‘산책하는 글쓰기’ 수업을 통해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내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꼽는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사람은 럭비공씨다. 그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글을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예전에는 인터넷은 왜 하나 싶었는데 줌마넷(zoomanet.co.kr)에서 활동하기 위해 독수리 타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줌마네 회원들은 스스로 기획을 하고,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외부 활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 뒷바라지와 가정을 돌봐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글을 쓰며 밤샘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직 가족에게 어색하다.

 엄네씨는 “가끔씩 남편이 줌마네 일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며 “그래도 남편이 신문에 나온 기사를 스크랩해 회사 사람들에게 자랑했을 때는 내가 하는 일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소녀의 친구 때로는 동네 기자가 되는 아줌마

 줌마네는 산책하는 글쓰기 외에도 회원들의 힘을 모아 출판, 프로젝트 구성 등을 이뤄내기도 했다. 2003년 밥 하는 아줌마들의 일상을 그린 수필집 「밥퍼 안퍼」를 시작으로 「서울댁 장보기 사전」, 「민주네 정치 일기」 등을 출판했다. 2008년부터는 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해「줌마네 손 잡지 1호―뚜벅뚜벅 연남동」, 「아줌마들이 만드는 지역 잡지―동네 한 바퀴 더」, 「마포 사는 구직녀를 위한 일자리 올레」 등 수강생이 힘을 모아 지역을 위한 글을 썼다.

 올해는 6월, 9월에 각각 12주, 8주 코스로 여학생(줌마네는 ‘소녀’라고 지칭한다)들을 위한 ‘모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모모’는 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주인공으로 ‘잘 들어주는 아이’를 뜻한다. 아줌마와 소녀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적어 이야기를 나눈다. 소녀들은 ‘하루만 반짝 만화방’, ‘나무늘보 되기’, ‘친구들을 하루 동안 공부에서 자유롭게 해주기’ 등의 발상을 기획했다.

 꽃바람(경기도 고양시·37)씨는 “아줌마와 소녀 모두가 서로의 모모가 되어 소통하면서 삶의 내적 동기를 키우는데 의미가 있다”며 “다른 세대와의 소통이 삶의 반경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줌마네는 사진, 영화, 인문학 강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줌마네의 목표는 글쓰기에서 나아가 기획하는 능력을 키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줌마네를 통해 전업 주부였던 수강생들은 줌마네를 통해 자유 기고가, 사업가 등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 대표는 “옆 동네를 거닐고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 신경 쓰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며 “초반에는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에너지로 동네를 바꾸고 아이들을 변화 시키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박준하 기자 parkjunha@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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