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안녕
  • 이진송(국문07)
  • 승인 20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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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어그(UGG)대학교’가 개강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종강과 연말이 코앞이다. 마지막 칼럼의 일정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쓸까 오래 고민했다. 이맘때는 언제나 기말고사와 막바지 과제에 쫓기느라 주위의 풍경이 어떤지, 그 순간의 나는 어땠는지 곱씹어볼 기회를 놓치고 만다.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던 텅 빈 학관의 나무를 보면서 이 겨울이 지나면 아는 얼굴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새로운 이화가 시작될 거라는 실감이 났다. 그 생각을 하면, 한 발 앞서 상사병에 걸리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이건, 이화와 이화인에게 부치는 연서(戀書)다. 참고로 비연애 인구이자 무성애자이기 때문에 제대로 러브레터의 흉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지난주는 졸업생을 위한 채플 주간이었다. 채플 미이수자인 필자는 3번이나 축하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많은 졸업생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 중에는 졸업생이 아닌데도 함께 눈물을 흘렸던 재학생도 있을 것이다. 처음 이화에 들어섰을 때 학교는 공사장이었다. ECC를 만드느라 지금의 ECC 주변은 바리게이트를 쳐놓았고 대강당에 가기 위해서는 공사판에 임시로 낸 길을 따라 박물관 앞까지 빙 돌아야 했다.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고 총학생회는 학생문화관 유리벽에 매달려 고공농성을 진행했다. 그 자리를 도망치듯 달아날 때 여우비가 흩뿌렸고, 그 차갑고 드문드문한 빗방울은 오랫동안 죄책감의 감촉으로 남았다. 가치관이 다른 누군가와 누군가는 갈등하고, 힘이 약한 쪽은 때때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성적과 대학입시, 야간자율학습이 전부인 좁은 세계가 아닌 곳, 어디를 선택하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이 시작되는 지점에 놓이는 경험. 그 충격이 아니라면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일까. 체크카드의 사용과 하이힐 혹은 음주의 자유 때문에 스무 살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재빠른 물고기처럼 움켜쥘 사이도 없이 손가락 새를 빠져나가버렸다.

2008년에는 영부인에게 수여되는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경호를 위해 캠퍼스에 투입된 무장경찰들과 대치하고, 학생들이 돈을 모아 한겨레신문에 수상을 반대한다는 광고를 1면에 싣기도 했다. 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의 축제가 테러를 당하면서 학생들이 자보를 통해 소수자의 인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토론했다. 올해는 학교의 미화노동자분들과 학생들이 연대하여 적극적으로 복지 개선 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학교 앞에서 홈리스 자활잡지인 ‘빅이슈’를 판매하는 아저씨께서 1호로 독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누군가는 알고 누군가에게는 재학 이전의 역사이기 때문에 생소할 것이다. 그 외에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다.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새면서 비밀의 화원에 동시 접속한 벗들과 ‘지금 내 앞에 벗이 혹시 그 벗이오?’같은, 공학이었다면 러브 코미디였을 대화를 한다든가 비탈 잔디에서 잠들었다가 천천히 굴러 떨어지던 중력의 엄밀함, 채플 1분 전 기어이 구두 신은 텍사스 소떼가 되고야 마는 뜀박질 등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분명 한 시절에 존재했던 장면이다. 그때를 그때만 가능한 색깔로 칠하는 사건이다.

나무가 시간을 제 몸 안에 새기듯, 이화에서의 소소한 기억들을 모두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아픈 기억이든 따뜻한 추억이든 이화 안에서 일어났고 이화인이 중심이었으며 이는 곧 이화의 정체성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풍문과 소문으로만 전해지기 마련인 이화를 기억하는 방식은 이렇게 개인이 직접 목도하고 경험한 바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화가 힘겹고 고통스러운 이름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충만하고 사랑스러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그러하다. 이화를 사랑한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도 평생 그리워할 시절이었다. 이화를 원망한다. 너무나 많은 과제와 팀플과 빡빡한 출석으로 나의 젊음과 달콤한 잠을 ‘퍼가요~♡’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증오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이화를 이루는 모든 것에 뜨거운 안녕을 고할 때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학기의 종강일 뿐, 떠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내년부터 다시 펼쳐질 것이다. 당신이 기억하는 이화는 어떤 모습인가? 아주 찰나의 순간, 스쳐지나가는 작은 조각이라도 놓치지 말고 붙들어보았으면 한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빛나고 귀한 것일지도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