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제 : 미 국무부 통역사로 활동한 이연향 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 10월12일~14일 오바마 미 대통령의 귀와 입이 된 숨은 공신이 있다. 미국 국무부에서 통역사로 근무하다 통번역대학원으로 복귀한 이연향 교수(통역학과)다. 11월28일 오후5시, 다음날 있을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에서 힐러리 미 국무장관의 통역을 맡아 준비에 여념 없던 그와 얘기를 나눴다.

이 교수는 1996년 미국 몬트레이 통역대학원 교수로 활동할 당시부터 미 국무부와 인연을 맺고 고위급 지도자들과 활동하며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수없이 함께 했다. 외교 통역, 특히 국빈 통역은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부담감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리는 아니다. 통역 내용이 그대로 웹사이트에 기재되고 통역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만 잘못 사용해도 기자들의 지적을 받습니다. 통역은 이미 한 말을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죠. ‘봉사정신’이 있어야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교수의 전공은 뜻밖에도 성악이다. 그는 예원, 예고를 거쳐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성악을 전공한 것은 그에게 또 다른 장점이 됐다. 소리에 민감했기 때문에 언어를 쉽게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과 언어 모두 듣는 것에서 시작해요. 높낮이가 있고 호흡이 중요하다는 점도 같죠."

그는 중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이란에서 국제학교를 다닐 때 익혔던 영어를 바탕으로 대학시절 영자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아르바이트로 통역을 몇 번 해보긴 했지만 통역을 업으로 삼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진 살림만 했어요.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데 마침 친구가 한국외대 통번역 대학원 시험을 같이 치르자고 해서 보게 됐죠.”

그는 얼떨결에 본 시험에 덜컥 합격해 만학의 길을 걷게 됐다. “나이가 많다보니 젊은 친구들에 비해 분석력, 상식 등은 좋은데 기억력, 순발력은 많이 뒤쳐졌어요. 하지만 집에만 있다 학교에 가니 공부하는 게 좋아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통역의 달인인 이 교수도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맡은 통역현장에서 그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회계용어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채 회계 관련 업무 현장에 파견됐기 때문이다. "부끄러워 통역이 끝나고 부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 일 후 공부도 많이 하게 되고, 잘 모르는 분야는 일을 가려 받는 분별력이 생겼죠."

이 교수는 공부를 즐기는 그의 성격도 통역사로서 성공하는데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 주제, 참가연사에 대한 정보, 배경지식을 익히는 것이 필수기 때문이다. "특정 주제에 관한 통역을 맡으면 당장 현재의 상황과 그 주제의 역사적 흐름까지 전부 파악해야 합니다. 힘들지만 수업료를 내지 않는 공부라고 생각해요."

음악과 통역 못지않게 교육도 그의 주요 관심분야다. 그는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하고 통역사로 왕성히 활동하다 1996년 미국으로 건너가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로 재직한 후 2004년 본교 통번역대학원 교수로 임용돼 부원장을 지냈다. "통역사로 활동한지 얼마 안 돼 강의를 맡았을 땐 제가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 그만 둔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수업을 듣고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걸 보면 즐겁습니다."

한미 양국을 오가며 통역과 교육 분야를 동분서주하는 그의 다음 목표는 도서집필이다. 이 교수는 교재 같은 통역 관련 전문서적과 그가 지금껏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접하며 느낀 세계관을 풀어낸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오해를 줄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있다 보니 문화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낍니다. 서로를 이해하면 더 화목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쉼 없이 새로운 목표를 찾아 도전하는 그는 5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느 젊은이 보다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변주연 기자 yksbj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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