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웃을 일 없는 국민들 사정을 헤아렸는지, 최근 모 국회의원이 집단모욕 혐의로 한 코미디언을 고소하면서 ‘큰 웃음’을 주었다.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누가 개그맨인지 모르겠네’, ‘코미디를 능가하는 진짜 코미디가 나타났다’ 며 이를 비꼬는 의견들이 빗발쳤다. 어처구니없는 정치인의 행동에 실은 어떤 ‘꼼수’가 숨겨져 있었다고 한들, 마땅한 비판을 도리어 고소로 맞받아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본인의 치졸함만을 드러내는 일이다.

 문제가 된 코너는 KBS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이었다. 일명 ‘일수꾼’ 분장을 한 선생님이 등장해, 아이들에게 ‘정치인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집권 여당의 수뇌부와 친해진 뒤 공천을 받기만 하면 된다’ 고 일러줬다. 신랄한 풍자에 관객들과 시청자 모두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경시하는 풍조가 남아있는 우리 사회지만, ‘광대’들의 ‘웃음’과 ‘윗분’들의 ‘정치’가 엮이는 일이 최근 들어 더욱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부정부패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코미디 소재로 취해 이를 비틀고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는 미국에서 상당히 발달돼 있는 놀이문화다. 대통령 흉내를 내는 코미디언이 폭발적 인기를 얻는 것은 예삿일이고, 정치인의 말실수 하나에 패러디 동영상 수백개가 만들어진다. 심지어 최근 미국 대선후보 토론회 도중 자신의 핵심공약을 기억하지 못하며 놀림감이 됐던 릭 페리는 TV토크쇼에 출연해 스스로를 희화화하며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들은 웃음 앞에서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그 이면에 숨은 뜻을 파악해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유머를 ‘고소’ 아닌 유머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와 유사한 진풍경은 매년 2월에도 벌어진다. 미국 최대의 영화축제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전날에 치뤄지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는 그해 최악의 영화와 배우들을 선정해 시상한다. 더욱 재밌는 것은 공개적인 치욕이 될 수 있는 이 상을 받으러 배우들이 제 발로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배우 산드라블록이 참석해 ‘최악의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았다. 그녀의 저의를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최악의 연기상을 받고도 당당히 웃을 수 있는 배포와 여유가 보기 좋게 느껴졌다. 자신이 희화화됨을 알고도 꺼리지 않는 것은 본인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겸손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제는 ‘웃으면 우스운 것’이 아니라 웃을 줄 알며, 남을 웃게 할 수 있는 재주가 최고의 능력으로 인정받는다. 웃음 앞에서 깃을 세우고 점잖을 떠는 것만이 권위를 얻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웃더라도 자신의 모자람을 ‘쿨’하게 인정하며 함께 웃을 줄 아는 자세가 환영받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민족에겐 예로부터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 봉산탈춤을 비롯해 익살과 재기가 넘치는 다양한 놀이들은 답답한 사회와 지난한 일상의 해방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렇듯 지금의 사회 역시 ‘뒤틀린 재미’를 주는 웃음들을 발판으로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기를 ‘웃으면 저절로 복이 들어온다’ 고 하는데 그렇다면 잘 웃을 줄 아는 사회 역시 마땅히 행복해지지 않을까.

 전설적인 블랙코미디의 대가 찰리 채플린은 어렸을 적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술주정뱅이와 아픈 부모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에게 웃음은 삶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웃음이 없는 하루는 버린 하루다’라는 말을 남기며 웃음을 평생의 철학으로 삼기도 했다. 배우 짐 캐리 역시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소년시절부터 학교에 가는 대신 ‘스탠딩 코미디언’으로서 무대에 서며 돈을 벌었다. 언젠가 읽은 인터뷰 기사에서 유년기의 아픔 때문인지 그에게선 조울증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고,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웃음기가 없던 사람이라는 글쓴이의 평이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 뒤 한 켠에서 눈물을 감추었을지언정 관객들에게 최고의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가 주었던 웃음과 짙은 페이소스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아마도 그들이 그토록 노력했던 이유는 웃음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행복과 긍정의 힘을 누구보다 확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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