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에 ‘김애란 신드롬’이 불고 있다. 지난 6월 그녀가 발표한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출간 5개월 만에 16만부가 판매됐다. 필자는 제목은 마치 일일 드라마같고 병 걸린 어린자식과 철없는 부부라는 진부한 설정인 이 소설에 왜 젊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필자도 얼마 전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인 17살 한아름은 부모님이 17살에 사고쳐 태어났다. 아름이는 조로증에 걸려 죽기 전 철없는 어린 부모에게 그들의 청춘을 그린 「두근두근 그 여름」을 선물한다. 이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읽으며 필자는 당연히 눈물을 가득 머금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큭큭대며 웃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김애란에 대해 “넘치는 유머로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조롱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진 놀라운 작가다”라고 했다. 과연 이 슬픈 이야기에는 유쾌한 시선이 가득했다.

 두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향해 다짜고짜 퉁명스레 물었다. “그래, 너는 뭘 잘하냐?” 아버지는 무릎 꿇은 자세로 어쩔 줄 몰라하며 답했다. “아버님, 저는 태권도를 잘합니다.”... 외할아버지의 침묵이 초조해 말을 보탰다. “보여드릴까요?” 주먹을 불끈 쥔 게 누가 보면 장인을 때리려 한다고 오해할 만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또 뭘 잘하나?” 아버지의 머리 위로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나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잘하는데……’ 하지만 그런 걸 입밖에 냈다간 장인에게 귀싸대기를 맞을지도 몰랐다. ... ‘그럼……나는 정말 뭘 잘하지?’ 아버지는 머리를 감싸안고 고뇌하다 자신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장인 앞에서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님.”그러곤 이내 깨달았다. ‘아! 나는 포기를 잘하는구나!’

 철없고 무능한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유쾌하게 그리는 아름이의 표현에 순간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아름이의 태도에 매료됐다. 아름이에게서 우리 세대의 아픔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조로증은 이 시대에 대한 일종의 상징이며 ... 너무 일찍 늙어 버린 세상이 바로 김애란이 보는 우리 사회”라고 파악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아비로 대표되는 의지할 만한 어른이 없는 것은 물론 오히려 아비를 걱정해 주는 단계로 와 있다는 것을 김애란의 소설이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들에 대한 책들은 필자를 88만원 세대라는 극심한 절망에 빠뜨렸다. 또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시대에 대한 본질적 해답 없는 위로를 선사했다. 하지만 「두근두근 내 인생」은 달랐다. 구질구질한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필자를 슬픔에 빠뜨리는 동시에 슬픈 현실을 유쾌하게 긍정하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현실을 직시하며 한껏 슬퍼하는 동시에 자유분방하게 즐기는 젊음은 이 소설 속뿐 아니라 지구반대편에도 있다. 바로 반(反) 월가시위에 나선 미국의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지고 청년실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껏 뿔났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게 자신들의 아픔을 전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시위대를 주시하는 뉴욕 경찰들을 그리는 모습과 통기타로 시위를 노래한 자작곡에서 아름이의 긍정이 느껴졌다.

 필자는 아름이의 긍정을 진은영의 「견습생 마법사」에서도 느껴왔다. “대마법사 하느님이 잠깐/외출하시면서/나에게 맡기는 창세기”에는 “수리수리 사과나무 서툰 주문에,/자꾸만 복숭아, 복숭아 나무”가 열린다. 덕분에 “이브는 복숭아가 익어가는 나무 그늘에서 기다리다, 잠이”들고 “윌리엄 텔은 아들에게 독화살을 날리는/비인간적인 일에서 해방된다”. 이 세상은 사과가 아닌 복숭아의 출현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다. 유쾌하게 복숭아를 만들어내면서 인간의 죄악, 비인간적 행위로 인한 절망이 사라진다.

 필자는 사과의 역사를 직시하되 절망하지 않고 복숭아의 역사를 꿈꾸고 싶다. 앞으로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진부하고 절망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다가올 모든 순간에 “두근두근”하고 싶다. 아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어쩔 줄 모르던 어머니의 심장에서 난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소리처럼, 죽음 앞에서 “나 좀 무서워요”라는 아름이의 고백을 받고 휘청한 아버지의 심장에서 난 “쿵……쾅……쿵……쾅……” 소리처럼. 설레는 순간 뿐 아니라 한없이 걱정스러운 순간, 무섭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두근거릴 수 있도록 우리들의 인생에도 ‘김애란 신드롬’이 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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