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연예인 좋아하냐는 말 듣기 싫어 ‘일코’하죠” “아이돌 좋아하는 게 그렇게 이상해요? 전 당당하게 ‘일코해제’합니다”

“아직도 연예인 좋아하냐는 말 듣기 싫어 ‘일코’하죠”
“아이돌 좋아하는 게 그렇게 이상해요? 전 당당하게 ‘일코해제’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돌’은 명실 공히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소녀시대의 ‘Gee 신드롬’으로 시작된 걸그룹의 범람과 그것을 열정적으로 선호하는 삼촌팬의 등장, 과거의 소년 이미지와 확연하게 다른 ‘짐승돌’과 거기에 열광하는 이모 팬덤(fandom·연예계나 스포츠계의 팬 집단), 음악 프로그램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마저 독식하는 ‘예능돌’ 등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본지는 23일(목) 아이돌의 팬이라고 밝힌 이화인 2명과 아이돌 팬 생활, 한국 사회에서의 아이돌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문대 ㄱ씨는 샤이니, 2PM을 거쳐 현재 7인조 보이그룹 인피니트(Infinite)의 팬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범대 ㄴ씨는 소녀시대가 데뷔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소녀시대의 팬이다.


△아이돌 팬질은 일종의 ‘취미생활’…‘안방팬’이 행복해

-현재 좋아하는 아이돌의 ‘팬’이 된 계기는

ㄱ씨 : 중학생 때부터 일본어를 독학하며 아라시(嵐), 킨키키즈(KinKi Kids)등의 일본 아이돌에 관심 있었다. 그러다 2008년 데뷔한 샤이니를 계기로 한국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게 됐다. 인피니트의 팬이 된 이유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들의 아이돌답지 않은 자유분방함 때문이었다.

ㄴ씨 : 고등학교 친구의 영향으로 동방신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동방신기의 기획사(SM 엔터테인먼트) 연습생들을 알게 됐다. 그 중 한 명이 현재 소녀시대 멤버인 서현이었는데 한 눈에 띄었다. 그러다 서현이 소녀시대로 2007년 데뷔했고 소녀시대가 노래, 춤, 외모, 예능감 등을 고루 갖춘 점에 끌려 팬이 됐다.


-20대 여성 팬덤 사이에서는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로 어떤 연예인의 팬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닌 척 하는 행위)가 성행하기도 한다

ㄱ씨 : 단순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팬이라고 말하는 것에 차이가 크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팬 활동에 깊이 빠져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너 아직도 연예인 좋아해?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라는 반응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ㄴ씨 : 나는 오히려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항상 내가 소녀시대 팬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내게 ‘여자가 여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게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팬 활동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 적이 있나

ㄱ씨 :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어쨌든 내게 아이돌 팬 생활은 취미활동에 불과하다. 아이돌이 나오는 TV, 라디오 방송을 본방사수(본 방송을 반드시 본다’는 뜻의 신조어)하거나 인터넷 팬사이트에서 활동하면서 다른 팬들과 교류하는 수준이다.

ㄴ씨 : 나도 없었다. 다만 예전에 동방신기의 악수회(아이돌가수가 팬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하는 자리)에 갔던 적이 있었다. 오전5시에 집에서 나와 약4시간을 기다렸는데, 나중에는 춥고 배고파서 화까지 났다. 이후 안방팬(공개방송이나 공연에 직접 가지 않고 TV나 인터넷으로 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 팬덤, 과거보다 ‘쿨’해졌지만 사생활 ㅤㅉㅗㅈ는 건 여전해

-과거의 팬덤과 현재의 팬덤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ㄱ씨 : 달라진 신곡 홍보 방법이 대표적이다. 신곡이 발표되기 전 팬들이 직접 홍보 물품을 들고 방송국을 찾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인터넷에서 친구에게 ‘1인 1곡 선물하기’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음원 점수를 높이기 위해 특정 음원 사이트에서 아이돌의 신곡을 반복재생하기도 한다.

ㄴ씨 : 팬덤이 성숙하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기부나 봉사활동 같은 사회적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팬들의 이러한 활동은 해당 연예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ㄱ씨 : 한 아이돌에 끝까지 충성한다는 생각도 많이 사라졌다. 1세대 아이돌 팬덤까지만 해도 한 가수만 끝까지 좋아하는 충성이 미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잡팬(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다수의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으로 욕먹었다.

ㄴ씨 : 요즘에는 동시에 여러 아이돌의 팬이 돼도 비난받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취존(‘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의 준말)이 가능하다면 문제없다.


-아이돌의 공개연애가 다소 용인된다는 점도 과거 팬덤과의 차이점인 것 같다

ㄱ씨 : 그런 면에서 과거의 팬덤보다 현재의 팬덤이 좀 더 ‘쿨’해졌다.

ㄴ씨 : 나도 아이돌 공개연애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 아이돌은, 팬들에게 가상 애인 역할을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약하면, 비밀연애는 상관없지만 공개연애는 팬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생팬(연예인 사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면서 활동하는 팬)은 여전히 고질적 병폐다.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ㄱ씨 : 개인의 취향문제인데, 연예인이 싫어하는데도 지장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ㄴ씨 : 사생팬은 팬들 사이에서 이중적 시선을 받는다. 어쨌든 다른 팬들에게 고퀄의 떡밥(일반 매체를 통해서는 잘 알 수 없는 연예인의 사진이나 후기)을 던져줌과 동시에 연예인을 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연예인도 사생활이 있기 때문에 화장실까지 ㅤㅉㅗㅈ아 들어가는 행동은 자제해 줬으면 한다.


△아이돌은 우리 사회의 ‘욕망’을 투영한다

-아이돌은 왜 잘 ‘팔릴’까

ㄱ씨 : 아이돌을 원하는 수요가 많다.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고통, 실업률의 증가, 치열한 입시 경쟁 같은 고질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탈출구 역할을 아이돌이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팬들이 팬픽(팬과 픽션의 합성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 같은 2차적 가공물을 만들면서 그들의 판타지를 실현한다.

ㄴ씨 : 삼촌팬과 이모팬들의 화력도 무시할 수 없다. 과거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이들이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각 연령층의 엔터테인먼트 소비가 증가하고 개개인의 문화적 취향이 다원화 됐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돌스타가 되기 위한 지망생들의 노력을 빗댄 ‘아이돌 고시’라는 신조어도 있다

ㄱ씨 : 아이돌은 말 그대로 우상이다. 잘 나가는 아이돌들,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가졌다. 아이돌 신화에 도전하는 10대들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이돌 되기에 매달리는 것 같다.

ㄴ씨 : 범세계적으로 케이팝(K-POP)이 유행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한국의 아이돌 제작 시스템이다. 한국 아이돌은 완벽에 가깝기에 사랑받는다. 하지만 그 완벽함을 위해 아이돌은 연습생 시절부터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야 한다. 아이돌 고시라는 말이 생긴 이유는 얼굴, 몸매, 춤, 노래, 외국어, 개인기 등 각 분야에 통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아이돌이 대중음악 시장을 잠식해 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생각하나

ㄱ씨 :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그 아이돌의 음악만 듣는 것은 아니다.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다는 장점도 있지만, 비주얼 퍼포먼스 위주의 가창력과 표현력이라는 한계점도 있다.

ㄴ씨 :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아이돌의 음원은 길게 가봐야 3주 정도다. 아이돌이 미디어에 자주 출연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음반시장 모두가 아이돌에게 잠식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와중에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도 계속 존재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은 어떤 의미인가

ㄱ씨 : 개인적으로 MSG(화학조미료의 성분)를 잔뜩 넣은 떡볶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맛있어서 중독되지만 몸엔 좋지 않은 맛. 한국의 아이돌은 공장식 제작 시스템과, 최고를 지향하는 제일주의가 결합한 한국 연예 비즈니스계의 산물이다. 아이돌을 양산하는 기획 시스템과 문화산업 제반이 더 발전하지 않는다면, 한국 가요계의 아이돌 열풍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ㄴ씨 :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대입하고 실현시키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소녀시대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젊은 여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돌 팬이 아닌 이화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ㄱ씨 : 아이돌 좋아한다고 모두다 오타쿠(한 가지 일에만 병적으로 집중하거나 집착하는 사람 혹은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마니아적 성향을 지닌 사람)는 아니다. 나는 아이돌 팬 활동을 취미로 가졌을 뿐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사람이다.

ㄴ씨 : 내 주변 이화인들에게는 어차피 내가 소녀시대 팬이라고 다 말하고 다니기 때문에 대신 아버지께 당부의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아버지, 소녀시대 팬질은 단지 제 취미생활일 뿐입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고요.”


한보민 기자 star_yuka@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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