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TOP밴드 준우승팀 ‘포’(POE)의 리더 물렁곈, 윤영주씨의 이야기를 듣다

“그 모든 것에 등을 돌려 도망치고 있는 우린 함께 Yeah we are falling……”

10월15일 오후10시 서울 여의도 KBS별관. ‘포(POE)’의 보컬 물렁곈이 눈을 감자 허스키한 목소리와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쏟아졌다. KBS 2TV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밴드’의 최종 우승 경연에서 2인조 밴드 ‘톡식(TOXIC)’과 포가 맞붙은 자리였다. 이날 우승은 1천515점 대 1천345점으로 톡식에게 돌아갔다. 준우승 소감으로 “2등도 과분하다”며 웃던 포의 리더 물렁곈(본명 윤영주, 심리·11년졸)씨.

‘TOP밴드’ 방송이 끝난 후에도 라디오 방송 출연, 단독 콘서트준비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그를 15일(화) 홍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카페에 들어서는 그를 보고 몇몇 사람들은 ‘물렁곈 아냐?’라며 수군댔다. 카페 주인은 ‘사인 좀 해 달라’며 서비스로 아이스크림을 내오기도 했다.

윤씨는 본지의 인터뷰 요청이 굉장히 쑥스럽고 어색했다고 말했다. “방송 끝나고 종종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계신데, 이럴 때 정말 부끄럽고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돼요. 주변에서 하도 물렁곈이라 부르니까 이젠 윤영주라는 본명이 어색하기도 하죠.”

윤씨의 예명 물렁곈은 ‘물렁물렁 외계인’의 준말이다. 학창시절부터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말하는 족족 사람들을 놀라게 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렁물렁 외계인’이라는 이름은 남을 해치지 않으며 남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소심한 외계인이라는 뜻이에요. 제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생각과 행동들이 다른 이에게는 실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궁금했어요.”

윤씨는 학창시절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그의 가슴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다섯 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는 그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공부를 하면서도 음악이 하고 싶었지만 참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차피 평생 음악을 할 거니까 공부할 수 있는 나이에는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거든요.”

2006년 본교 사회과학부에 입학한 그는 그해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때까지 윤씨는 한 번도 정식으로 대중음악을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음악의 기본부터 배우자’는 생각에 밴드계의 유명 프로듀서이자 더더밴드의 리더인 김영준씨를 찾아가 김씨의 스튜디오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보통 매일 오전6시~7시 스튜디오에 출근했죠. 청소를 비롯한 잡다한 일을 하다가 학교 가고, 수업 끝나면 다시 스튜디오로 가서 어깨너머로 음악 배우고, 늦은 밤중에 집에 가서야 비로소 밀린 과제와 시험 준비를 했어요. 대학시절 제 시간표를 보면 매일이 ‘연강’이었습니다. 그래야 스튜디오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니까요.”

윤씨는 포의 리더이자 키보디스트 겸 보컬이다. 포는 작년 1월 EP앨범(Extended Play, 싱글에 비해서는 좀 더 길지만, 보통의 음반으로 보기에는 짧은 음악 레코드) ‘Burn out’으로 데뷔했다. 포는 작년 한해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부산 록페스티벌, 제천 국제 음악 영화제 등 여러 무대에 초청받은 실력파 뮤지션이다. 그해 6월 EBS의 음악 프로그램인 스페이스 공감에서 ‘6월의 헬로루키’로 선발되기도 했다.

“저희 밴드 이름에는 딱히 거창한 의미가 없어요. ‘포’라는 미완성의 단어 뒤에 어떤 알파벳이 붙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포(POE)뒤에 ‘M’이 붙으면 시(POEM)가 되는 것 처럼요. 저희 밴드의 음악이 미완성이기에, 그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음악이 완성된다는 의미도 있어요.”
윤씨는 밴드 멤버들의 성화에 TOP밴드에 출전하게 됐다. “솔직히 저는 TOP밴드에 나가기 싫었어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대중성을 잘 몰랐거든요. 멤버들은 ‘우리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저를 설득했죠. 사실 저희가 공연을 할 때 관객 분들이 아예 없거나 한두 명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어요. 그래서 ‘되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지’라는 심정으로 참가하게 됐어요.”

그는 TOP밴드 준우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포의 대회 참가목표는 24강 진출이었다. ‘꼴찌만 하지 말자’로 시작했던 일이었다.

“포가 준우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듣는 이들의 마음속에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포의 음악은 우울하면서 슬프거든요. 저희가 오히려 상처를 건드리고 드러내니까 이에 공감해서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가 포의 리더로 승승장구하기까지는 힘든 일도 있었다. 지금은 영혼을 울리는 몽환적 보컬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한때 그도 음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동네 공원에서 열리는 노래자랑에 나갔다가 사회자의 비웃음을 산 경험은 보컬연습 강행군으로 이어졌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에 12~13시간씩 노래연습에 매진했다. 그 연습이 3년 동안 계속돼 성대결절로 고생하기도 했다.

“성대결절로 병원에 갔더니 약을 먹고 쉬래요. 그런데 당시 보컬 선생님께서 ‘평생 노래로 먹고 살 놈이 그거 좀 아프다고 쉴 거야?’라며 저를 다그치셨어요. 그 말 듣고 더 열심히 연습했더니 목소리가 아예 허스키하게 굳었죠.”

윤씨는 평생 음악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 음악은 내 속에 있는 나를 꺼내는 작업이죠. 저만의 진정성이 담긴 음악으로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어요.”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그랬듯 꿈을 향해 과감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거기에 미칠 수 있어야 해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이 하고픈 대로 가길 바랍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12월24일~25일 홍대 롤링홀에서 열릴 단독 콘서트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크리스마스에 ‘솔로’를 위한 공연을 하겠다고 밝혔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위로받는 자리에요. 절대로 애인이랑 오지 말고, 혼자 오세요. 이화인들은 특급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한보민 기자 star_yuka@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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