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울란바토르의 항공에 떠 있다. 나는 항상 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동체가 어둠 속에서 착륙할 곳을 찾지 못한 채 하늘을 빙빙 맴도는 상황을 상상한다. 송신탑과 몇 번의 다급한 대화와 신호가 오가는 사이 사람들은 기도를 하거나 옆자리 모르는 사람의 손이라도 꼭 잡고 싶어질 것이다. (중략) 자신의 밖을 조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당이 안 될 때, 안은 머리털이 서도록 무섭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시인 김경주가 쓴 「패스포트」의 ‘날개의 블루스’ 중 일부다. 「패스포트」에는 시인이 고비 사막과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여행한 이야기가 섬세하고도 날 선 감성으로 쓰여 있다. 필자는 문득 삶에 여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저런 변명 같은 이유로 훌쩍 떠나지 못할 때 이 책을 꺼내 든다. 서걱서걱 페이지를 넘기며 그것을 위안 삼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늘 그렇듯 수업을 듣거나 과제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취업이라는 마음의 짐을 지고 ‘변화가 시작되는 곳’에서 ‘나’도 멋진 선배들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과 불안에 잠식당한다.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을 보면서 ‘나’는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일상’이란 낱말을 고요히 들여다보네 / 고요히 꿇고 있는 못 같은 일상 / 풍경에 울타리치고 / 아무나 다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 / 고요한 익사 // ‘일상’이란 낱말을 고요히 들여다보네 / ㄹ은 언제나 꿇고 앉아 있는 내 두 무릎의 형상을 닮았네 / 일상은 어쩌면 우리더러 두 무릎을 꿇고 앉아 / 자기를 섬기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네 / 무릎을 꿇고 / 상이 용사처럼 두 무릎을 꿇고 (후략)

이 시는 김승희 시인의 「일상에서 ㄹ을 뺄 수만 있다면」이다. 필자는 시를 보고 ‘일상에 무릎 꿇린 상이 용사는 바로 나였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필자에게는 친구도 잘 만나지 않고, 수강이나 과제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료히 지내던 때가 있었다. 무료함은 곧 ‘다른 친구들은 토익 공부도 하고 계절 학기도 수강하던데 나는 무엇을 하는 거지’와 같은 불안으로 옮겨갔다. 일상에 잠식당해 자꾸만 침잠하는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러던 중 필자는 한 사이트에서 이런 글을 봤다. 한 누리꾼이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적은 글을 올렸다. 한 누리꾼은 댓글로 명문대에 입학하고, 지금은 한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한 줄이 필자의 기억에 남는다. ‘별거 없이 살았네…’

필자는 그때 겪던 불안이 스무 살의 불온전함에서 연유한 필연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남들만큼 내 삶에 열정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그런 생각들은 변명일 뿐이었고, 필자의 머릿속엔 그 변명들이 필자의 삶을 ‘별거 없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이렌이 울렸다. 이후로 필자는 불안을 필자의 원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필자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막연한 불안이 주는 긴장감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록금, 바늘귀만큼 좁은 취업문, 학기말을 맞아 물밀듯 밀려오는 과제까지… 우리에게는 가을의 말간 하늘 아래서 불안해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오는 불안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의 불안이 즐길 만한 긴장이 되길 바라며, 필자에게 위안이 된 ‘날개의 블루스’를 마저 독자에게도 전하고 싶다.

삶이라는 것도 나는 이와 비슷하게 여긴다. 어떤 삶의 난기류를 만나 우리가 안전하게 착륙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지금의 삶은 우리를 더욱 살아있게 한다. (중략) 어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도 늘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도 위험했지만 내 안의 고공과 위도를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 한 지점에 띄워놓고 왔지.' 그것을 약간의 자부심 삼아 자신의 생으로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 지나친 기만일 수도 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내부의 지진을 감당할 수 있는 좋은 기류였던 셈이다.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다면 우리는 기내機內라는 모든 순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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