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성장한다. 그렇지만 과제에 시험에 바쁜 대학생들은 오히려 그들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쉽게 지나친다. 그 중 하나가 학문의 연구가 정점을 찍는 곳, 학문 발전의 밑바탕이 되는 곳인 대학 박물관이다. 선선한 가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대학 박물관을 찾아가보자.

 

△약2천점이 넘는 희귀 만화자료를 보유한 청강대 만화역사 박물관

  만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1909년부터 오늘날까지 만화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곳이 있다. 청강문화산업대 청강홀 3층에 위치한 청강대 만화역사 박물관이다. 2002년 12월에 개관한 이곳은 만화 출판물 및 육필원고 등 약2천종의 국내 희귀만화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에 들어서면 노랗게 빛이 바랜 원고와 만화책들과 마주한다. 시대별 만화의 특징이 이 종이 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도형 작가의 국내 최초 만화인 ‘삽화’를 볼 수 있다. 1칸짜리의 흑백만화다. 그 옆에는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을 지닌 캐릭터들이 있다. 어수룩한 표정과 달리 쏟아내는 말에는 정부를 비꼬는 풍자적인 의미가 담겼다. 1960년대 군사정부 시절,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시사만화가 김성환씨의 만화다. 청강대 만화역사 박물관 홍윤표 박물관장은 “우리 박물관은 희귀한 자료를 모아둬 만화를 통해 관람객들이 당시 시대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전시실 곳곳에서 작가별로 그의 특징과 만화에 대해 소개하는 글, 만화책을 볼 수 있다. 길창덕 작가가 ‘꺼벙이’에서 말풍선에 직접 글을 써넣어 그의 필체도 엿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작품 건너편에는 연필로 여러 번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해 새까맣게 보이는 그림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것은 신동헌 만화가가 ‘진로소주’ 만화 광고를 만들기 위한 육필원고다. 이 작품들과는 달리 컬러로 제작된 이정문 작가의 ‘설인 알파칸’도 양장본(딱딱한 커버의 표지로 덮인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 박물관에서 복간(간행을 중지하거나 폐지하고 있던 출판물을 다시 간행)작업을 완료한 작품이다.

 

△수도권에서 유일한 항공우주과학분야의 박물관인 한국 항공대 항공우주 박물관

  경의선 화전역,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비행기 한대가 탁 트인 활주로를 달린 후 땅을 차고 하늘 높이 이륙한다. 한국항공대 정문을 지나 500미터 쯤 걷다보면, 듬성듬성 전시된 비행기들이 한국 항공대 항공우주 박물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항공우주박물관은 수도권에서 항공우주과학분야의 유일한 박물관으로 항공우주과학분야의 이해를 돕기 위해 2004년 8월에 개관했다. 연간 관람객은 7만 명으로 대학박물관으로는 가장 많은 외부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고 있다.

  항공우주박물관에 들어서면 비행기 동체를 연상시키는 아치형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연도별로 정리 된 항공역사, 양력발생의 원리를 비롯한 항공기 조종 장치 등 항공기에 대한 판넬이 전시돼 있다. 항공우주박물관에는 약80종의 모형 항공기가 전시돼 있는데 최초의 비행기인 ‘라이트플라이어호’부터 날아다니는 5성급 호텔이라 불리는 최신의 민간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 항공기’ 등이 전시돼 있다. 그 외에도 1층에는 항공기 엔진을 비롯한 각종 항공기 부품과,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비행시뮬레이션과 가상체험관 그리고 영상관이 위치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우주발사체(로켓)의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유독 눈에 띄는 전시물은 2층 한가운데 전시된 실물 로켓모형이다. 이것은 항공대학교와 벤처기업에서 산학협동으로 제작한 실물 하이브리드 로켓으로 실험용으로 사용된 후 박물관에 기증돼 전시되었다고 한다.

  박물관 실내 관람을 마치고 옥외전시장으로 나가보면 우리나라 교통부에 최초 등록된 민항공기인 ‘L-16’과 항공대 항공기 제작반 학생들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X-4’, ‘X5-’ 등  8대의 실물 항공기 등 약10대의 비행기를 관람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설립된 최대 규모의 고지도 전문 박물관인, 경희대 혜정박물관

  경희대 국제캠퍼스 정문 앞에서 빨간 광역버스(캠퍼스 안에서는 무료 운영)를 타고 ‘생명과학대’ 정류장에 내린 후, 내리막을 따라 100m만 걸으면 중앙도서관을 마주할 수 있다. 그곳 4층에는 ‘경희대 혜정박물관’이 있다.

  혜정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최대 규모의 고지도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장인 김혜정씨가 30~40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은 지도를 바탕을 2005년 5월에 설립됐다.

  박물관 입구를 따라 왼편으로 가면 1전시실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 11세기경에 만들어진 가죽지도가 눈에 띈다. 이 가죽지도는 겉으로 봤을 때 아무 글자가 없지만 특수촬영기로 봤을 때는 지도가 나타난다. 그리고 1전시실에는 현재 <아름다운 세계 고지도>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지도들이 전체적으로 화려한 색깔을 자랑한다. 이는 주로 판매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예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 아래, 대각선 등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12명의 바람의 신이 바람을 ‘후’하고 부는 모습으로 지도 사방에 그려진 것도 있다. ‘프톨레미 세계지도’다.

  제3전시실에서는 동해가 역사적으로 지도상에서 어떻게 표시되어왔는지 알 수 있다. 16세기 서양 고지도에 동해는 동양해 또는 동방해로 표기돼있다.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까지 많은 고지도에서는 비로소 코리아해(MER DE COREE)라고 적혀있다. 이는 동방해가 점차 코리아해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다 19세기 이후는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확장으로 일본해(Sea of Japan)으로 명시된 지도들도 많이 나타난다.

  혜정 박물관은 ‘Sea of Korea’ 또는 ‘Corean Sea’로 표시된 고지도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동해를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특히 이 박물관은 독도, 간도 등이 우리나라 영토임을 나타내는 고지도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명시하는 여러 고지도도 전시됐다. 1737년에 제작된 ‘한국의 영토(ROYAUME DE COREE)’에는 우리나라 영토에 독도와 울릉도가 각각 퐌링타오(Fan-ling-tao), 친찬타오(Tchian-chan-tao)로 명시됐다. (그러나 실제 명칭은 독도가 Tchian-chan-tao이며, 울릉도가 Fan-ling-tao인데 당빌의 ROYAUME DE COREE 지도에는 이들이 바뀌어 표시됐다.)

 

△2점의 국보와 6점의 보물을 보유한 동국대 불교미술 박물관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 내려 6번 출구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동국대 중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다 숨이 가빠질 때 쯤 큼지막한 나무 옆, 100평 남짓한 2층 건물이 보인다. 건물 안을 향해 걷다보면 조명 아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석조여래좌상’을 조우한다. 이곳은 1963년 개설된 불교전문박물관인 ‘동국대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2점의 국보와 6점의 보물을 포함한 총3천여 점의 중요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인 1전시실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불교조각을 비롯한 불교미술품들이, 기획전시실인 2전시실에는 특별 공개유물 및 불교회화 등이 전시돼있다.

  1층 상설전시장은 불교건축·조각·경전·공예 등으로 나누어 관람할 수 있다. 제일 처음 볼 수 있는 것은 네 개의 귀가 달린 보협인탑이다. 국보 209호로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특이한 형태의 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국대박물관에 있는 보협인석탑이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전시관 깊숙이 들어가면 깨져있는 큰 종을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손상돼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몇 안되는 범종 중 하나인 ‘실상사 파종’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져있다. 악기소리가 종에서 울리는 것 같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석탑부조신장상’ 및 ‘석조여래입상’ 등 불교조각품들도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이광배 학예연구사는 “단단한 화강암을 조각해 만든 불교미술 작품은 우리나라 조각기술의 뛰어남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chearinle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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