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구나, 이제 알겠다.”
“그랬구나, 이제 알겠다.”
  • 김인아(식품·08)
  • 승인 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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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 소설에는 늘 갈등이 있다. 아무리 매력적인 주인공이 있어도 갈등 없이 이야기의 감칠맛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갈등은 이야기에 있어 양념 같은 존재다. 갈등 없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다. 아무리 신선한 재료와 훌륭한 요리사가 있어도 양념 없이는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야기 속의 갈등이 양념이라면, 현실에서의 갈등은 완성된 음식 위에 뿌려진 재다. 우리 삶속의 갈등은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갈등으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입곤 한다. 때때로 인간관계까지도 위태로워진다. 이런 갈등은 우리 주변에서 놀라우리만치 쉽게 생긴다. 그게 문제다.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정한 관계가 형성되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친구, 가족, 연인 같은 저마다 다른 관계에서 갈등이 공통적으로 생기는 것만 봐도 그렇다. 결국 우리는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갈등도 피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인간이 혼자서 살아간다면 갈등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에겐 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내 안의 갈등이 남아있다.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한 자기 안의 갈등도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 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다는 노래가사처럼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갈등 역시 피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정신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이런 갈등을 조금이라도 더 멋지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랬구나, 이제 알겠다.” 라는 유행어를 기억하는가. 몇 주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왔던 바로 그 말이다. 대화의 과정은 매우 간단하다. 먼저 서로에게 오해하던 일이나 서운한 일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는 “그랬구나,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게 너에게 상처가 되었구나.” 라고 말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상대의 기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공감이 시작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은 쉽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행동하기에는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갈등이 시작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늘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 배려는 사라진다. 상처만 남는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새 그 관계는 깨지고 만다.

“그랬구나, 이제 알겠다.” 라는 말이 의미하는 건 단순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 그리고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음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 이 방법이야 말로 갈등을 해결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 우리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마주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민으로 인해 지쳐있는 나에게 “그랬구나, 그런 고민들이 나를 힘들게 했구나. 내 스스로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구나.” 라며 공감해보자. 나를 가장 잘 이해해할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닌가.

노란 은행잎이 이화동산을 노랗게 물들이는 가을이 왔다. 이맘때면 중간고사가 끝나고  과제들이 쏟아지곤 한다. 팀 프로젝트를 가장 활발히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팀 프로젝트는 유독 많은 갈등을 빚곤 한다. 그렇다면 이번 학기부터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태도를 버리고 이해와 공감의 자세로 한 걸음 내딛어 보는 건 어떨까.

지금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혹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갈등으로 인해서 힘들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상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한번 쯤 이야기 해보자.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그리고 공감하고 있음을 알려주자. “그랬구나, 이제 알겠다.” 이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진심으로 다가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