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 속의 여성 - 여성 리더를 찾아서 (5)

  조선시대 여성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고, 방 안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한이 많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조선시대 여성을 이런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규범’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다층적 삶의 궤적을 삭제한 결과, 곧 선별과정을 통해 구성된 것이다.

  ‘강빈’은 그러한 선택적 기억의 구성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 여성 가운데 하나이다. 강빈은 소현세자의 부인 강씨이다. 그녀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새롭게 부상한 시기에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끌려가 10년간 살았다. 인질생활은 고생스러운 것이었지만, 소현세자와 강빈으로서는 조선왕실의 규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강빈은 새로운 문화의 혜택을 누렸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산을 늘려서, 심양에서 돌아올 때 진귀한 물건을 수백 바리 싣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에 돌아온 뒤에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1646년 3월 15일 인조는 며느리인 강빈에게 사약을 내렸다. 이유는 강빈이 인조 자신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으며 심양(瀋陽)에 있을 때 조선의 왕위를 바꾸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훗날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금기의 인물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인조는 “지난 해 가을 분한 마음을 품고 큰 소리로 발악하고 아랫사람으로 문안하는 것까지도 여러 날을 폐했으니,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못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인조는 ‘며느리’인 강빈의 행동에 대해 ‘시아버지’에 대해 도전한 것으로 이야기하며 권위로 누르려고 하였지만, 사실은 그녀를 두려워했다. 인조는 “강씨가 젊었을 때에는 별로 불순한 일이 없더니 심양에서 나온 뒤로부터 사람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돌아와서부터는 양양자득한 기상이 점점 더하였다. 나의 거처 가까이에 와서 큰 소리로 발악하고 심지어 통곡까지 하였다.”며 맹비난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선의 신하들은 그런 강빈을 지지했다. 인조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고 아껴준다, 강빈의 권세가 중하다”고 한탄했다. 인조가 강빈을 죽인 것에 대해 당시의 사람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조차도 ‘억울하다’고 여겼다. 그녀의 죽음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관원들이 목숨과 벼슬자리를 내어 놓으며 왕에게 간청했다. 강빈은 당시 지배층 남성, 궁궐의 여성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이러한 강빈의 정치적 힘은 인조를 위협했다. 인조는 강빈을 죽여야 한다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호랑이를 키우면 우환이 된다”는 표현을 썼다. 시아버지에게 대든 며느리 강빈이 그러한 정치적 힘을 갖게 된 것은 그녀가 단순하게 성질 나쁜 며느리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조가 강빈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빈은 새롭게 등장한 청이라는 나라를 오랑캐가 아닌 중국의 새로운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에 있었다. 이러한 입장에 있기에 망한 명나라의 그늘 속에서 조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기존 지배집단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입장의 대립은 시아버지인 인조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다. 시아버지인 인조와 강빈은 변화한 세상에 대한 태도와 입장이 달랐기에 화합할 수 없는 관계였다. 강빈은 명청의 교체기에 조선의 왕실에 속해있으면서 가장 강력하게 현실(청나라)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 호랑이였다. 강빈이라는 여성이 그 시대의 제약과 역할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 시도를 한 여성이었다. 청나라에 인질로 가게 된 소현세자를 따라 간 강빈의 삶과 죽음은 조선시대에 여성에게 부과한 좁은 경계선을 넘나든 지배층 여성의 꿈과 그 좌절, 그리고 그 여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매장되고 사라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빈’은 당대에도 시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세상에서 ‘삭제’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삶이 그토록 흥미진진하고, 조선 후기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근현대 한국의 ‘사극’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대 한국 사회의 기억 속에서도 그녀는 삭제되어 있다. ‘강빈’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그녀가 꾼 꿈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불편한 꿈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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