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년 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외규장각 의궤 296권의 반환이 4월14일~5월27일 4차에 걸쳐 이뤄졌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국제 협상에서 외교통상부 공보담당관 유복렬(불어교육·85년졸) 과장은 박흥신 주불대사를 도와 모든 실무를 담당했다. 총6년의 주불대사관 근무로 다져진 프랑스 내 폭넓은 인맥과 사안에 대한 전문적 지식, 협상에 임하는 적극적 태도는 프랑스 협상단의 마음을 움직였고,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 같은 공로로 9월29일 정부로부터 근정포장을 수여받은 유씨를 3일(목)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만났다.

“외규장각 의궤 1차 반환분을 싣고 공항을 떠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면서도 잘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대사님과 술잔을 기울이는데 그간 고생했던 생각에 눈물이 나더군요.”

유씨는 외규장각 의궤가 전권 반환 되고 6개월이 흐른 지금도 외규장각 의궤만 생각하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당해 지금껏 프랑스국립도서관이 보관해 온 문화재다. 병인양요 때 불에 타서 소실된 줄만 알았던 의궤는 19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임시직 사서로 근무했던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외규장곽 의궤를 다시 국내로 들여오자는 반환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20년간 반환을 거부해 왔죠. 제가 1997년 11월에 외교부에 들어와 서구과 프랑스업무를 맡으며 이 사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꼭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1993년 9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하며 외규장각 의궤 중 한 권을 국내에 가져왔다. 이때 반환 협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10여년간 프랑스가 외규장각도서 관련 협상을 거부해 협상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박흥신 주불대사가 2009년 부임해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작년 초부터 양국 간 외교협상이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박 대사와 저, 프랑스 외교부의 아시아 국장과 동북아국가 담당 과장 이렇게 넷이 양국 반환협상 대표였습니다. 협상을 위해 서로 수없이 만나고 전화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프랑스 대표들과는 안면이 있어 협상 분위기가 대체로 우호적이었지만 각국의 국익을 반영하다보니 협상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도 많았어요.”

그가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데에는 프랑스 내부 인사와 돈독히 쌓은 친분이 큰 도움이 됐다. 유씨는 2001년 2월~2004년 2월, 2008년 3월~올7월까지 주불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덕분에 프랑스 내에서도 잘 알려진 외교인사다.

지금까지 외교부에서 외규장각 의궤 반환 문제는 순환 근무로 담당자가 계속 바뀌는 상황 속에서 큰 진전이 없었다. 유씨는 외교부에서 1997년부터 14년간 이 업무에 주목해 온 유일한 사람이다.

“2008년 다시 프랑스에 근무하면서 함께 일하는 프랑스 측 외교 인사들이 저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협상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들과 좀 더 친밀하게 일할 수 있었어요.”

유 과장은 양국 협상이 진행되던 당시 몸을 혹사시키며 불철주야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몸이 아픈 건 기본이었다. 협상이 진행되는 1년간 어깨통증을 달고 살았고, 스트레스성 피부염과 위염으로도 고생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2학년인 두 딸이 자신들을 ‘abandonner’(불어로 버린다, 유기한다는 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양국 협정문이 만들어 지기까지 대표 간 대화가 끊임없이 지속됐죠. 말로 하는 것보다 문서로 체계화 하는 것이 효율적일 거라는 생각에서 협상 대표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 한 주간 진전된 사안을 정리해 비공식문서(nonpaper)를 미리 만들어 회의 때마다 전달했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프랑스 대표들도 한층 협상에 우호적이었어요.”

프랑스 내에서 외규장각 의궤 반환에 반대하는 여론도 많았다. 외규장각 의궤를 절대 내줄 수 없다는 프랑스국립도서관측으로부터 의궤를 받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프랑스가 한국과의 관계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길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이전보다 많이 발전됐습니다. 이 점에서 프랑스는 한국의 의궤 반환 요청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외규장각 의궤를 ‘대여’ 형식으로 반환받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 과장은 그로 인해 한 사안에 대해 국민들에게 바르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우리 것을 되돌려 받는데 무슨 대여라는 말도 안 되는 형식이 필요하냐’는 비판은 지극히 정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국내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외규장각도서를 돌려받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우리가 실질적 점유를 한다는 실리적인 접근방식을 택한 것이죠. 이 방식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의 차선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7월 외교통상부 사상 최초로 여성 공보과장이 됐다. 유 과장은 앞으로도 외교부 공보 업무에 매진할 예정이다. “앞으로 정부의 모든 외교활동들을 국민들에게 바로 전달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보다 선진화된 한국외교, 그리고 국가위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데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유씨는 마지막으로 이화인들이 주체적이고 당당한 삶을 살길 당부했다. “스스로 뚫고 개척하는 끈기와 도전정신이 있다면 해내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와 견줘도 당당할 수 있는 이화인이 되길 바랍니다.”


한보민 기자 star_yuka@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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