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교육 컨설팅 전문 업체 구루피플스의 이창준 대표의 특강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이론을 알게 됐다. 플로우 이론(Flow Theory)이 바로 그것이다. 플로우는 어떤 일에 내가 나임을 잊을 정도로 집중하는 심리적 상태로 행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플로우는 완벽한 심리적 몰입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경험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라고 묘사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플로우에도 종류가 있다. 플로우 이론의 창시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그의 저서 ‘몰입 flow: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에서 두 종류의 플로우를 정의했다. 마이크로 플로우(Micro Flow)는 쉽고 단순한 행위에서 경험되어지는 집중, 딥 플로우(Deep Flow)는 어렵고 높은 난이도에서 기술력을 발휘해야 경험될 수 있는 집중이다.

플로우는 4단계에 걸쳐 마이크로 플로우에서 딥 플로우로 번지게 된다. 1단계, 어떤 일에 의도적으로 집중한다. 2단계, 그 집중을 즐긴다. 3단계, 방해를 받아도 집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4단계, 어떤 일과 나는 하나가 된다. 골자는 내가 하는 어떤 일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그 집중도 역시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딥 플로우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휴대전화 게임을 좋아하는 동생이 필자에게 오투잼(o2jam)이라는 음악 게임을 추천했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에 오투잼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았다(1단계). 리듬에 맞춰 액정을 두드리던 필자의 얼굴에는 콤보 개수가 올라갈 때마다 만족스러운 웃음이 지어졌다(2단계). 중간고사는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졸음은 쏟아졌지만 게임은 멈출 수가 없었다(3단계). 이야기하기 부끄럽지만 식사 중에도 게임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4단계).

휴대전화 게임에서 딥 플로우를 느끼는 필자에게 한층 더 고차원적인 딥 플로우를 가르쳐준 사람이 있다. 10월18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이다. 등반에는 문외한이었던 필자는 박 대장의 실종 소식을 듣고 관련 기사를 찾아 읽었다. 박 대장의 생전에 대해 알아가면서 필자는 그를 본받아 인생에서 딥 플로우를 느끼고 싶어졌다.

박영석 대장은 대원들을 끔찍하게 아꼈다고 한다. 그는 베이스캠프에서 지친 대원들에게 먹이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30만원짜리 6년산 홍삼을 손수 달이곤 했다. 에베레스트 원정 때 동행한 기자는 비품 텐트에서 콜라 한 병을 꺼내 먹었다가 힘든 대원들의 몫을 축냈다며 박 대장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등반에 대한 그의 심리적 몰입은 동료를 잃은 슬픔도 막을 수 없었다. 박 대장은 1993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다가 두 명의 후배를 잃었다. 2007년에는 같은 장소에 도전했다가 오희준, 이현조 대원 두 명을 더 잃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그치지 않았다.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에 이어 2001년에 히말라야 14좌 정복, 2005년에는 북극점을 밟아 세계 산악인 중 유일하게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2009년 마침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올라 후배 4명의 사진을 꺼내어 보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박 대장이 2003년 북극 탐험 중에 남긴 말이다.

미하이는 ‘완벽하게 몰입한 암벽 등반가는 자신이 마치 암벽의 일부이며 암벽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했다. 플로우 이론에 따르면 딥 플로우는 곧 행복을 의미하니 다행이다. 차갑지만 눈부시게 깨끗한 딥 플로우의 골짜기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은 행복했기를.

한 평생 암벽 위에서 춤을 추었을 박영석 대장을 상상하며 필자 자신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쉽고 편안한 길을 추구하고, 더 어려운 길은 두려워하면서 행복을 갈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게으른 집중과 몰입이 마이크로 플로우에서 딥 플로우로 심화되는 과정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는지.
지금 앞에 닥친 시련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자. 앞으로의 일은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몰입해보자. 힘들고 어려울수록 일에 대한 몰입은 행복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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