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들뢰즈의 운동-이미지의 세 번째 유형, 행동-이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의 관심에 따라 잘라낸 것이 지각-이미지이고, 이것이 야기한 정서가 변용-이미지를 채운다. 이로부터 어떤 행동으로 나아갈 때, 운동-이미지 체제는 비로소 완성된다. 행동-이미지를 이해하고 그 예를 떠올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우리의 생활 습관이 행동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헐리우드 영화 대부분이 이 이미지 유형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용-이미지에서 질(質)과 역량이 임의의 공간에서 ‘노출’되었다면(exposed), 이제 그것들은 지리학적, 역사적, 사회적으로 규정된 시공간 안에서 ‘현실화’된다(actualised). 변용-이미지가 리얼리즘과 긴밀한 연관을 맺는 것은, 리얼리즘이 환경과 행동을 양 극점으로 삼는 미학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행동-이미지는 이 둘 사이의 관계이며, 그리고 우리는 그 관계의 다양한 변종들을 볼 수 있다.

들뢰즈는 행동-이미지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상황-행동-상황"으로 나아가는 큰 형식과 "행동-상황-행동"으로 나아가는 작은 형식이 그것이다. 우선 큰 형식에서,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을 밝히는 것이다. 이 상황은 주인공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을 요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이에 부응할 수 있는 능력과 결단을 갖추게 된다. 결정적인 행동 이후 새로운 상황이 찾아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것의 대표적인 장르는 웨스턴이다. 멀리서 도착한 주인공은 범죄가 지배하는 마을을 구원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데, 이는 큰 형식에 전형적으로 부합한다.

여기에서 환경은 영화의 무대 전체를 감싸안는 ‘포괄체’처럼 주어지고, 질과 역량은 환경 내의 힘들로 변한다. 예를 들어, 존 포드의 서부극은 대부분 화면을 가득 채우는 파란 하늘에서부터 출발한다. 그의 하늘은 단순히 공간적인 배경 이상 의미를 지닌다. 무한히 넓은 하늘은 현실적인 힘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내보내는 잠재적인 지평같은 것이다.

카우보이와 인디언들 역시 이 환경-포괄체로부터, 즉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지평선이나 언덕으로부터 등장한다. 이들은 대립하는 힘들이 되고, 어떤 해결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환경과 힘들은 등장인물에 작용을 가하고, 역으로 등장인물은 그에 대해 반작용 한다. 이로부터 그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획득하고, 변형된 환경, 새로운 상황이 도래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행동의 순간에 두 가지 힘의 충돌, 대결이 벌어진다.

반면 작은 형식은 그 반대 순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없는 채, 맹목적인 행위 또는 우발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예기치 못하게 어떤 상황이 야기되고, 주인공은 그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장르는 익살극(burlesque)이다. 예를 들어, <모던 타임즈>(1936)에서 채플린은 산책 중에 길 위에 떨어진 작은 깃발을 주워 별 뜻 없이 흔드는데, 그 뒤로 우연히 시위대가 뒤따른다. 채플린은 영문도 모른채, 그 때문에 시위대의 주동자로 쫓기게 된다. 

들뢰즈에 따르면, 작은 형식의 핵심은 "ellipse"에 있다. 프랑스어에서 이 어휘는 ‘생략’과 ‘타원’이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갖는데, 이 두 가지 의미 모두와 관련된 어떤 것이 작은 형식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서로 상관없이 보이는 두 가지 뜻은 사실 하나의 어원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타원이란 원에서 뭔가 빠진 것이라고 고대 사람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생략과 관련해서는, 예를 들어, <파리의 여인>(1923)에서 여주인공이 가난한 시골을 떠날 때 기차역에서 기차가 보여지지 않는다든지, 이후 이 여인이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주인공이 되어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간 몇 년의 시간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렇다.

더 흥미로운 것은, 타원과 관련된 설명이다. 타원의 수학적 정의는 두 개의 초점을 전제한다. 이처럼 작은 형식의 주요 이미지들은 두 개의 상황을 동시에 지시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채플린의 천재성은 두 개의 초점 중 하나를 비극적 상황에 그리고 다른 하나를 희극적 상황에 배분할 줄 알았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동일한 행동이 희극적 상황으로도, 비극적 상황으로도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채플린이 공장에서 나사 돌리는 행동을 멈추지 못할 때(<모던 타임즈>), 우리는 그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와 동시에 현대 분업 체계 내에서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소외를 비극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의 유명한 말,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적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적이다"라는 말은 작은 형식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러한 양가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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