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도련님이 광한루 구경 나가셨다가 춘향 노는 모습을 보고 방자 시켜라 하였도다!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춘향가 중‘방자 분부 듣고’의 구수한 가락이 전통 떡살·북·쥘부채 등으로 꾸며진 헤더 윌로비(Heather A. Willoughby) 교수(국제학과)의 연구실을 가득 채운다. 판소리에 빠진 윌로비 교수를 24일(수) 오후3시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윌로비 교수는 1986년 7월 선교 활동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판소리를 처음 접했다. 성남의 한 대학교에서 우연히 보게 된 국악인 고(故) 김소희 명창의 공연을 통해서였다. 그는 “작은 체구에서 폭발적인 소리를 내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며 “2~4시간 동안 창자와 고수 단 둘이서 목소리와 몸짓만으로 수백 명의 관객을 집중시키는 판소리에 단번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 의학도였던 그는 판소리에 심취해 미국으로 돌아가 전공을 음악교육학으로 바꿨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에 한국에 다시 돌아왔어요. 한 달간 국립국악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 전통음악 특강에 참석했죠. 이때 가야금·경기민요·단소·장구·탈춤을 배우면서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는 판소리에 대한 갈증을 풀기위해 1999년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국립국악원을 통해 당시 떠오르는 신인이었던 이주은 명창을 소개받아 1년 동안 한 달에 1~2회, 회당 1~2시간씩 수업을 받았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그에게 고어와 한자어가 많은 판소리 가사는 큰 걸림돌이었다. 윌로비 교수는 “지금은 판소리 가사 번역 사전도 나와 있지만 옛날엔 환경이 더 열악했다”며 “가사를 단어가 아닌 소리로만 기억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배우는 속도가 너무 느려 춘향가를 완창하려면 413년이 걸릴 것이라는 농담도 들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윌로비 교수는 판소리를 배우며 유명한 소리꾼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유명한 소리꾼들의 고향인 고창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그는 “추수가 한창인 밭에서 4~5시간 동안 안숙선 명창의 춘향가 공연을 들었는데 이미 수십 번, 수백 번 들었던 춘향가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며 “마치 내가 춘향이 된 것처럼 구절마다 감정 이입이 돼 슬픈 대목을 들을 땐 눈물을 흘리고 웃기는 대목에서는 웃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 곡으로 주저 없이 춘향가를 꼽게 됐다.

한국을 그의 두 번째 고향이라고 여기게 된 것도 이 때였다. 그는 “음악, 그림, 도자기 등 한국의 모든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다”며 “김치찌개와 청국장 등 한식도 좋아해 매일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끝까지 한국에서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컬럼비아대(Columbia University)에서 인류음악학(ethnomusicology),  그 중에서도 한국 전통음악을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그에게 판소리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다. 그는 “배우면 배울수록 판소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며 “판소리꾼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여러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이자 4~5시간 동안 에너지를 쏟아내는 운동선수”라고 말했다.

 
윌로비 교수는 판소리의 주된 정서로 ‘한(恨)’을 꼽는다. 그는 판소리에 서린 한이 스페인의 플라멩코, 미국의 블루스, 포르투갈의 파두(fado)에 담긴 감정과 같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나라에는‘한’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지만 속에 담긴 감정은 모두 비슷하다”며 “이 감정이 노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련을 극복하고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끔 해준다”고 말했다.

윌로비 교수는 마지막으로 판소리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공연뿐만이 아니라 교류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판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면 더 깊은 관심이 생길 거예요. 직접 세계를 돌며 많은 사람들에게 민요나 아리랑을 가르치고 워크숍을 진행해 판소리를 널리 전파하고 싶습니다.”


변주연 기자 yksbjy@ewhain.net
사진: 배유수 기자 baeyoosu@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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