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두 가지 뜻
천고마비의 두 가지 뜻
  • 김우창 교수
  • 승인 2011.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고마비의 두 가지 뜻

김우창 이화학술원 석좌 교수

 

 그런대로 심각한 문제를 토의하는 어느 모임에서, 편한 마음으로 모임을 시작하자는 의도로 사회자가, “계절 가운데 가장 좋아 하는 계절이 어느 계절인가?”하는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것은 물론 지금이 가을이고 우리나라의 계절 가운데 가을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질문이다. 여름의 더위가 가고 겨울의 추위가 아직은 닥치지 않고 하늘과 산천이 맑고 밝은 계절이 가을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러한 가을 날씨를 시적으로 그려낸 한자성구로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이 있다. 상투적인 시적 이미지이고 또 생각해보면 오늘의 한국 사람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만, 맑게 개인 하늘 아래 말이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은 우리로 하여금 시원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 이미지는 높은 하늘만이 아니라 넓은 초원을 생각하게 하여 자연 속에 풀려난 동물의 한가함을 느끼게 한다. 오늘의 도시인에게 이것은 자연이 주는 해방감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요즘 이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보지는 못한다. 그러한 상투적인 말을 아직도 사용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문자 쓰는 능력이 케케묵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고, 그 말을 그러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말의 참뜻을 모르고 하는 일이라는, 유식한 사람들의 지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고마비는 한가한 가을 풍경을 환기하려는 말이 아니라 가을 하늘이 높아지면, 말이 살찌고 그러한 말을 타고 북방의 만족들이 쳐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여름의 더위와 장마에 시달리던 사람에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가을이다. 그리하여 그 맑은 날씨는 일단 반갑게 생각되지만, 가을의 도래는 다가올 겨울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겨울 걱정이 된다고 하여 가을 날씨의 아름다움을 감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얻는 것은 없고 손해만 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천고마비는 두 가지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또는 두 가지 뜻을 하나로 묶어 해석해도, 다 옳은 것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가을이 되고 말이 살 쪄서 북방의 만족이 쳐들어오는 것을 걱정하여 천고마비의 가을을 즐기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북방 만족의 침입에 대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가을을 즐겨서 나쁠 일이 없다.

  우리 현대시에서 인기 있는 시 중의 하나는 천상병의 “귀천(歸天)”이다. 이 시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는 구절로 끝난다. 참으로 저 세상에 가서 이 세상을 두고 아름다웠다고 보고할 수 있을까? 오늘의 세상에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움과 착함과 참됨과 행복을 확인할 수 있을까? 또 그렇기를 바라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릴케의 시, <오르페우스에 붙이는 소네트>에 나오는 중요한 말에 “찬양한다 ruehmen”는 말이 있다. 찬양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그는 말한다. 죽음의 티끌이 날리는 자리에서도, 인간이 누리던 권력과 영광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무덤에서도, 불길한 일이 예감되는 그러한 때에도 시인의 소명은 찬양하는 데에 있다. 시인은 인간의 모든 것을--아픔과 기쁨을 한데 섞어 거기에서 포도주를 짜내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찬양의 열매를 쟁반 가득히 받들어 가는 사림이다. 그러다 보면 아픔의 소리도 문득 어두운 세계 너머에 빛나는 별을 가리키는 소리가 된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더라도 죽음에 비하여,  모든 어둠에 비하여 또는 바로 그것 때문에 빛나게 되는, 삶을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릴케는 말한다. 또 천고마비의 가을에 흉노족의 침공에 대비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천고마비를 찬양하는 모순을 사는 것이 삶의 지혜일 것이다. 그러나 다가올 겨울을 걱정함이 없이 가을을 즐기는 일 그것 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