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가장 친한 친구 A는 한 달 전 그의 엄마와 사소한 이유로 크게 싸웠다. 매주 엄마랑 쇼핑이며 영화보기까지 함께하던 그는 한 달 동안 씩씩대며 엄마랑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문득 필자에게 카카오톡(카톡)을 하나 보냈다. ‘나 엄마랑 화해했다.’ ‘어떻게?’ ‘엄마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어.’ ‘그래서 화해했어?’ ‘응. 그렇게 됐어.’ 필자의 친구는 어제 그의 엄마랑 머리하러 미용실에 간다며 ‘^^’표시를 붙여 다시 카톡을 보냈다.

  미안해. 미안하다. 정말 내가 미안했어. 이 말이 도대체 어떤 말이기에 미안해로 인해 서로에게 한 달 동안 쌓였던 앙금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질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라 꺼내기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미안해라는 말을 하는 과정은 무척 까다롭다. 하나, 내가 타인에게 잘못을 했다. 둘, 타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셋, 타인의 눈을 바라보며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미안해라고 말한다. 과정 하나는 매우 쉽다. 하지만 둘과 셋은 결코 쉽지 않다. 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아집에 사로잡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좋다. 내가 남에게 잘못을 했다는 것을 누가 나에게 귀띔해줬다 치자.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건 분명 세 번째 과정일 것이다. 머릿속으로 내가 분명히 저 사람한테 잘못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미안해라고 한 마디 하는 것이 내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한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거북스러워 결국 미안해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를 합리화 시킨다. ‘나중에 하면 돼’ ‘걔도 전에 나한테 이런 잘못을 한 적이 있어. 그러니 나도 사과 안 해도 돼’ 등. 주저리주저리. 그러다보면 나와 타인은 해결해야할 것이 남았기에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고 오히려 더욱 잘못을 하기도 한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거나 혹은 그 사람은 내 곁을 영영 떠나간다.

  일반화 시키지 말라고? 과연 그럴까? 세상에 미안해를 못해서 생긴 불상사가 생각보다 꽤 많다. 필자의 부모님 부부싸움에 단골로 등장하는 엄마의 레퍼토리는 “네 아빠는 미안하다고 여태껏 같이 살면서 얘기한 적이 없어!”다. 사과를 안 해 헤어지는 커플도 부지기수다.

 사과를 거부하는 태도에 상대방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관련 단체들은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 매주 ‘수요집회’를 열고 있다. 수요집회는 내년 12월이면 1000회를 맞이한다. 1회, 2회로 끝날 줄 알았던 집회가 어느새 1000회다.  할머니들의 바람은 단 하나, 일본인들의 진심어린 사과다.

 84세의 송신도 할머니는 “눈 감기 전에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싶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에 계속된다. 일본 측은 사과 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오히려 돈 때문에 위안부 활동을 했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진심어린 사과가 진작 이뤄졌다면 할머니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매주 수요일 같은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것을. 사과를 통해 일본과 위안부 할머니들이 서로의 입장을 한 번 더 이해해 볼 수 있었을 것을.

  24일(월)은 사과데이다. 가족. 친구. 애인… 이제 그동안 속에 묵혀두었던 “미안해”를 입 밖에 내자. 길게 얘기하지 말고 상대방을 마주보고 “미안해”라고 일단 얘기하자. 그리고 꼭 상대방을 안아주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그 기쁨을 느끼자. 서로의 얼굴에 미소가 띄워지는 그 기쁨을 함께 느끼자. 올해가 가기 전, 주위의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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