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영화보기 (2) : 드레이어와 얼굴

이찬웅 이화인문과학원HK연구교수

운동-이미지의 분화

들뢰즈의 영화 철학은 베르그손의 세계관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다. 베르그손의 우주론에 기대어 들뢰즈는 여러 유형들의 이미지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분화하는지 설명한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이 우주는 어떤 중심도 없고, 이 안에서 모든 것은 유동하고 서로 상대적으로 운동할 뿐이다. 그리고 사물들은 서로간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데, 바로 그 영향 관계가 이미지를 형성한다. "모든사물들, 다시 말해 모든 이미지들은 그것들의 작용, 반작용과 구분되지 않는다 : 그것은 보편적인[전면적인] 변동(universelle variation)이다. 각 이미지는 ‘모든 면 위에서’ 그리고 ‘모든 요소적 부분들을 통해’ 서로 작용하고 반작용한다." 여기에서 길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물질과 이미지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생각은 베르그손의 사유의 독특한 점으로 표시해둘만 하다.

그런데 전면적인 변동의 우주 안에서 특별한 사물 또는 이미지가 생겨나는데, 그것은 생명체이다. 살아있는 신체는 "비결정성의 중심"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무생물의 경우와 달리,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 어떤 간격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베르그손의 진화론적 철학의 핵심 문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아메바와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생겨난 것은 바로 간격이다. 단세포동물에게서 작용과 반작용은 즉각적인 반면에, 인간 등의 복잡한 생명체에서는 지연이 발생한다. 작용은 신경중추와 뇌의 중앙집중적인 판단을 거쳐 반작용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깥으로부터 작용이 들어오고 바깥으로 반작용하는 사이에 판단과 정서의 지속을 생겨난다.

베르그손이 설명한 이러한 발생론적 분화에 맞추어 들뢰즈는 세 가지 운동-이미지를 정의한다. 나의 신체에 작용하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 중 나의 관심에 따라 잘라내진 이미지가 지각-이미지를 형성한다. 이것을 원인으로 하여 바깥의 다른 이미지들에 반작용으로 산출하는 것이 행동-이미지에 해당한다.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 지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을 채우는 것이 정서와 관련되는 변용-이미지이다.

우리는 지난 글에서 베르토프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그의 영화적 지각은 바로 지각-이미지의 중요한 한 예가 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변용-이미지는 무엇이고, 그것과 긴밀히 연관되는 영화적 기법은 무엇일까?

 

근접화면과 정서

예이젠시테인(Eisenstein)은 영화사의 초기 지점에서 이미 근접화면을 영화의 영혼같은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그것의 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코끼리 백 마리를 담은 전체화면보다 바퀴벌레 한 마리의 얼굴의 근접화면이 훨씬 더 무시무시하다." <전함 포템킨>(1925)의 유명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오데사의 계단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어린 자식 앞에서 절규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커다른 스크린을 채울 때, 분노와 슬픔의 표현은 가능한 최대치까지 끌어올려진다.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도 이 장면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이는 그의 회화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영화와 회화에서 변용-이미지는 근접화면(gros plan : 신체의 클로즈업과 사물의 인서트를 모두 포함한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왜냐하면 근접화면의 고유한 힘이란 어떤 대상을 모든 시공간의 좌표에서 분리해내면서 "차원의 절대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정서 자체를 표현하는데 집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드레이어(Dreyer)의 <쟌 다르크의 수난>(1927)은 변용-이미지로 가득 찬, 거의 그것으로만 가득 찬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근접화면을 극단적인 지점까지 밀어붙이면서 진행되고, 하나의 얼굴에서 다른 얼굴로 넘어가는 몽타쥬는 잠재적인 정서들만의 공간을 구성한다. 얼굴과 시선의 방향들은 의도적으로 불일치하게 맞추어져 있고, 이는 사실적인 시공간의 형성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이처럼 얼굴은 근접화면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신체 부위이다. 그것이 변용-이미지를 가장 잘 형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조형적인 관점에서 얼굴이 외부 충격에 대한 수용과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용-이미지가 얼굴과 클로즈업에만 배타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주의적 공간의 형성을 억제하는 영화적 기법에 따라, 사물이나 장소 자체도 어떤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벤스(Joris Ivens)의 <비>(1929)라는 작품은 도시의 분위기만을 담은 영화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어느 오후, 도시의 거리, 하늘, 연못, 지붕, 창밖은 그 자체로 스산함, 쓸쓸함, 분주함 등의 정서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 장소는 특정한 도시에서 촬영된 것이지만, 어느 도시라도 될 수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분리된 공간을 들뢰즈는 "임의의 공간"이라 부른다. 이러한 공간은 얼굴만큼이나 훌륭하게 정서를 전달한다.

이벤스. 비 (1928)
이벤스. 비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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