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신자본이다
이제는 정신자본이다
  • 박정수 교수 (행정학과)
  • 승인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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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잘하려면 기본적으로 지식자본이 커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시장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바로 아이디어와 지식이다.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경제대국들은 모두 지식자본으로 무장된 나라들이었다. 지식자본은 인간이 가진 욕망과 이기심을 고취시킴으로써 키울 수 있다. 우리가 세계4위의 특허출원국이란 지적 혁신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교육열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경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신뢰와 협력의 정신자본의 축적이 필요하다. 신뢰와 협력은 사회의 거래비용을 낮추고 시너지를 낼 수 있게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전략적 변곡점을 맞고 있다. ‘나’만 아는 경제에서 ‘너’를 포용하는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동안 물질적 성장만 추구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 전통적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사라지고 이기심, 불신, 불만만이 가득차게 되었다. 그나마 있는 신뢰도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집단을 벗어나면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OECD평균보다 낮았던 신뢰지수와 부패지수가 점점 더 악화되거나 더디게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행복지수까지는 갈 필요도 없다.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은 산업화를 이룬 우리의 청교도정신으로 한국적 자본주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푼푼이 저축하여 축적한 자본으로 부자가 되어야 부자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받고 자본주의 사회의 정당성이 생긴다.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은 존경받지 못하게 되고 자본주의 사회의 정당성과 믿음이 구축되지 않아 사회의 안정이 흔들리게 된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방식은 더욱 중요하다. 나만이 아니라 너를 포용하는 따뜻한 마음이 충일할 때 아름다운 사회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정신자본, 신뢰, 공동체의식, 나눔, 협력, 청렴(integrity), 반부패 등의 개념은 결코 이념적으로 편파적인 가치일 수 없다. 상대적으로 국가발전과 세계화, 경쟁을 더 강조하다보니 이러한 가치들이 덜 강조되었던 것도 사실이고 또 실제 정치, 경제, 행정, 사법 권력의 부패사례를 어렵지 않게 보아오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정신자본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시민의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일상적인 거리에서의 교통질서와 생활에서의 법치수준으로 시민의식을 평가할 때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는데 동의하는가. 부산저축은행사태를 보아도, 함바집 비리사건을 보아도 도처에 부패고리는 여전하고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는 이러한 부패고리가 한국의 번영을 발목잡을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조밀하게 살아가는 환경만을 탓할 수만은 없다.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월등하게 1위를 지키고 있다(‘09년 기준 표준인구 10만명당 28.4, OECD 평균 11.2). 합계출산율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낮다(’10년 기준 1.23, 세계평균 2.52). 생활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행복지수는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생활수준도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개선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해외에 나가서 대기업의 광고표지판을 보고 뿌듯해 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삶이 푸근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그런 사회로 만들어가야 한다. 특히 이화인은 최소한 나와 너를 함께 생각하는 삶의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사업이나 관광을 위해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들도 많다. 외국인이 낯설어 밀어내는 느낌을 받기보다 포용하고 껴안는 전지구적 사고와 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에서 이들을 제외하고 제조업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지 않았는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차이 중 하나는 역사해석의 다원주의라고 한다. 선진국에서는 역사해석의 다양성이 자유이자 권리로서 보장받는다. 다양성의 가치와 유연한 사고를 어릴 때부터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통해 기르는 것이 선진시민교육의 중요한 과제다. 이제는 경쟁력도 생산성에 더해 매력이 대세인바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는 롤스의 정의로운 사회,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균형잡힌 접근이 필수다. 물적 자본과 정신자본의 확충이 때로 상충하기도 하지만 이 둘의 동반성숙은 우리에게 필요조건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