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두달 전부터 복싱을 하고 있다. 눈치를 보면서 복근 운동을 건너뛰는 꼼수도 부리고 아직 거울 속의 모습이 어색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부쩍 재미를 붙이는 중이다. 배우 이시영이 신인여자아마추어 복싱전에서 챔피언을 거머쥔 이후 여성들의 복싱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는 기사가 과장은 아니었는지, 체육관에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반반 정도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 간(?)을 보러 갔다가 남성들만 바글바글한 데 거부감을 느끼고 돌아왔던 3년 전과는 매우 다른 풍경이다.

필자가 즐겨 쓰는 단어 중 ‘비연애 인구’를 잇는 ‘비운동 인구’가 있다. 말 그대로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많은 이화인이 숨쉬기 혹은 숟가락 들기를 가장 큰 운동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여성들에게 운동은 곧 다이어트를 의미하고, 바쁜 일상과 병행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운동은 헬스나 요가, 필라테스 정도로 한정되어 있으며 모두 몸매 관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싱도 ‘빠른 체지방 감소, 탄탄한 바디 라인 완성!’이라는 매혹적인 문구로 여성 회원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얼굴이 찌그러져 가면서 열심히 주먹을 날리는 이시영의 모습에 여성들이 선망을 느끼는 것은, 비단 홍보 효과를 톡톡히 한 그의 몸매 때문만은 아니다.

복싱은 격투기라는 점에서 여성들과 거리가 멀고, 남자들만 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 격투기 선수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성 격투기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여자는 남자보다 생물학적으로 약하다’는 통념을 의심하게 된다. 그들은 대부분의 남자보다 강하고, 자신감 넘치며, 자신의 몸을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 특유의 당당함을 풍긴다. 이를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했던 ‘여성 몸의 연약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볼 수 있다. 여성들이 어릴 적부터 쉬는 시간마다 축구와 농구를 하고, 밥을 많이 먹도록 권장되고, 또래들끼리의 물리적 힘이 곧 서열이 되는 환경 속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몸을 갖고 있다. 몸은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나’가 지금 ‘이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유독 여성들은, ‘몸매’ 가꾸기에만 집중하도록 독려되면서 정작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일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치마를 입고, 작은 체구를 유지하고, 다리를 모아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몸은 ‘일정 범위에 정지된 상태’에 머물게 되고, 결국 자신의 몸이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남자를 보고 덜컥 겁을 집어먹어야 하는가? 이는 불특정 다수를 타겟으로 한 범죄에서 언제나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몸에 느끼는 무력감, 특정 상황에서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은 곧 여성의 행동 전반과 사고를 제약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신체를 부딪치며 놀아준 여아일수록 위협적인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한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이는 몸을 쓰는 경험이 일상적 관계나 충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성의 물리적 힘이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약할 수 있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과학이 기라면 기니까. 그러나 반드시, 어떤 상황이든, 꼭 그런가는 우리 스스로 질문해야 할 문제이다. 복싱장에서 목격한 바로, 여성은 빠르고 우아한 훅을 날릴 수도 있고 샌드백을 남성만큼이나 박력 있게 칠 수도 있다. 그 모습은 겨드랑이 부분만 색깔이 변하거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본래 뛰놀기 좋아하고 정글짐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한 소녀였다. 지방을 덜어내고 S라인을 만드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자신이 진짜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움직여보자. 의자 위에서, 킬힐 위에서 움츠린 몸이 활짝 펴지면서 제한된 공간을 넘어서는 해방감은 무척이나 짜릿하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무력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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