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부터 요리까지 손에 손잡고 … 공동체주택 ‘소행주’를 만나다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되살림가게’에서 옷을 사고 ‘동네부엌’에서 반찬을 산다. 공동체를 통해 입는 것(依)과 먹는 것(食)을 해결하는 셈이다. 올해 5월, 성미산마을에서는 또 다른 실험이 시작됐다. 사는 곳(住)에도 공동체적 생활을 적용하고자 한 시도가 그것이다. 본지는 9월28일~29일 무채색의 컨테이너박스가 층층이 쌓인 듯한 독특한 외관 때문에 마을사람들로부터 ‘까만 집’이라는 별칭이 붙은 공동체 주택,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 1호’를 찾았다.

 

△‘씨실’과 ‘날실’…배려가 싹트는 공동 공간

성미산마을 공동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과마을’ 사무실과 마을카페인 ‘작은나무’ 사이 골목으로 약120m를 직진하면 특이한 외양이 눈에 띄는 6층 건물인 소행주 1호를 만날 수 있다. 소행주에 도착한 손님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1.5m2 남짓한 넓이의 작은 화단이다. 소행주 식구들과 성미산 마을주민들은 이곳을 ‘반평 공원’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자투리 공간에 소나무 한 그루와 낮은 나무를 심고 옆에 평상을 마련해 마을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꾸며진 쉼터다.

입구에 서면 오른편 벽에 그려진 그림이 눈에 띈다. 벽화에는 ‘마을극장’, ‘도토리 방과 후 교실’ 등 마을의 주요 기관들이 노란 은행나무와 어우러져있다. 벽화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림 속 담벼락에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이 한 듯한 낙서가 있다. 소행주 박흥섭 공동대표는 “낙서는 소행주에 사는 아이들이 한 것”이라며 “주민으로서 그림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낙서를 권했다”고 말했다.
소행주에는 모두 9가구가 살고 있지만 이곳에 참여하는 사람은 9가구 주민들만은 아니다. 소행주 곳곳에는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손길이 배어 있다. 입구 오른편의 벽화도, 허전한 입구에 활기를 주는 조각품들도, 층과 층 사이를 알록달록 수놓은 그림도 모두 마을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예술로써 소행주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사람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소행주 사람들은 마을기관을 위해 2층 공간을 기꺼이 내줬다. ‘성미산공방’, ‘비누두레’, ‘도토리 방과 후 교실’ 등 마을 자생단체와 일 공동체에게 평당 입주금을 낮춰준 것이다. 성미산공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여 밀랍초, 양모펠팅 제품을 만들어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다. ‘비누두레’는 성미산 마을 엄마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비누를 만드는 곳이다. 여기서 나온 제품들은 생협 연합회와 작은나무 카페 안에 ‘샵인샵(Shop in shop)’ 형태로 입점한 풀방구리에 납품되고 있다.

어른과 아이를 위한 다양한 책이 가득한 책장, 대형 빔 프로젝터, 부엌, 넓은 마루와 탁자가 있는 ‘씨실’도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씨실은 옥상 ‘날실’과 함께 소행주 커뮤니티의 핵심 공동공간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모여 식사도 하고, 인기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를 다함께 시청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도토리 방과 후 교실'에서 놀다가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두 공간이 이어진 작은 통로도 있다. 주민들은 씨실 입구에 놓인 ‘씨실이용대장’에 어떤 집이 언제,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적어 집들이 행사 등의 개인용도로 씨실을 사용할 수 있다. 좁은 집을 넓게 쓸 수 있게 하는 서로를 위한 배려다.

소행주 주민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오후7시 씨실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준하는 또 어디갔어? 지원이는?”
“준하는 졸려서 자고 있지~”

식사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는 이웃 아이들을 찾는데 여념이 없다. 소행주에는 대학교 이상 3명, 중학생 1명, 초등학생 및 미취학 아동 15명 등 19명의 아이들이 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김우(42․마포구 성산동)씨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을 이곳에 살게 되면서 매일 만나게 됐다”며 “연령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지붕 밑에서 따로, 또 같이 살면서 위계질서 없는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월요일~금요일 오후6시~8시에는 소행주 식구가 한 명 더 늘어난다. 매일 두 가지 반찬과 밥을 준비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3가구가 만든 ‘저녁에서 해방되기 모임(저해모)’에서 초청한 가사도우미 ‘해당화(별칭)’씨가 오기 때문이다. 세 가구가 돌아가며 한 주씩 장을 보고, 해당화씨는 그 재료를 갖고 밥과 국, 반찬을 준비한다. 그는 “재밌는 공동체 주택 살림도 엿보고 도움도 줄 수 있어 기쁘다”며 “저녁을 먹고 아이들의 재롱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동생활 공간인 ‘날실’은 7층 옥상에 있다. 잔디 바닥 한 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배추, 열무, 파가 손을 맞는다. 옥상은 마을 전경을 바라보는 전망대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들이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휴식공간이 되기도 한다. 여름에는 대형 튜브에 물을 채워 놓으면 아이들을 위한 수영장이 된다. 옥상입구에는 공용창고가 있다. 공용창고에 놓인 대형 여행가방, 돗자리, 축구공은 필요한 집에서 사용하고 그때그때 갖다 놓는다. 박 공동대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이곳에 두고 나눠쓴다”며 “나누면 더 커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느린 집’에서 ‘청우서재’까지 … 개성 넘치는 개인 공간

소행주의 3~6층은 개인생활공간으로 각 층에는 2~3가구가 살고 있다. 입주자가 본인의 생활습관과 개성에 따라 각자 설계했기 때문에 아홉 집의 모습은 모두 천차만별이다. 각각의 집 앞엔 301호, 302호와 같은 딱딱한 숫자 대신 ‘청우서재(聽雨書齋, 빗소리를 듣는 서재)’,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와 같은 개성 넘치는 이름이 적힌 문패가 놓여있다.

소행주 주민을 포함한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별칭으로 부른다. 사회적 직함이 서열을 만든다는 생각에서다. 느려서 별칭이 ‘느리’가 된 김우씨의 집 이름은 ‘숨는 집’이다. 느릿느릿 세상을 탐색하다가도 혼자가 되고 싶을 땐 집에 쏙 들어가는 달팽이가 되고 싶은 그의 바람을 엿볼 수 있다.. 숨는 집은 부엌이 매우 간소화된 대신 개수대가 두 개다. 설거지를 많이 쌓아두기 위해서다. 3개의 방은 마주보는 방 없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다. 마주보는 방이 없는 탓에 방문도 달지 않았다. 김씨는 “아이와 지내다보니 뚫려 있는 공간이 더 자연스러워 문을 달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우서재에 사는 ‘하하’ 변정희(마포구 성산동․36)씨 집의 자랑은 정원이다. 발코니에 창을 다는 대신 라일락과 매화나무를 심었다. 잔디도 깔고 풍경도 달아 작은 공간이지만 정원 느낌을 냈다. 변씨는 “남편이 빗소리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해 비오는 날 일부러 드라이브를 나가기도 했었다”며 “이곳에 이사 오고 나서는 집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빗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아홉 가구가 소행주 1호에 함께 거주한 지 5개월 째, 40명에 가까운 주민들은 아직 단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공동생활 때문에 개인 생활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도 기우였다. 김씨는 “뜻이 맞는 몇몇 가구들은 ‘부부의 날’을 정해 육아를 분담한다”며 “아이를 이웃에 맡기고 부부끼리 데이트를 즐길 수 있어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서에 공동체 주택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소행주의 주거문화 변화를 향한 도전은 지금까지 순항 중이다. 그들은 올해 8월부터 2호 입주희망자를 받기 시작해 현재 소행주 2호를 만들어가기 위한 모임을 갖고 있다. 소행주가 또다시 만들어 낼 주거문화의 반향이 기다려진다.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 1호는 우리나라에서 드문 코하우징(co-housing, 이웃과 더불어 사는 협동주거) 주택이다. 부엌, 식당, 놀이 공간 등을 공동으로 사용해 공간 효율을 높이고 이 공간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소행주는 진정한 입주자 참여형 주택을 실현하기 위해 작년 3월 회사를 설립하고 성미산마을에 위치한 토지를 매입했다. 이후 뜻을 같이하는 성미산마을 커뮤니티 사람들을 모아 사전모임을 했다. 이들은 함께 공동공간을 설계하고 각자 개인 공간을 직접 설계했다. 그해 9월 착공을 시작해 올해 4월말 입주해 현재 9가구 약40명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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