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지당, ‘사회적 유전자’를 남기다

‘바람의 딸’로 잘 알려진 한비야 씨는 2007년 5월 ‘열아홉 살 청춘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내 자식을 낳기 힘들게 됐지만 물리적 유전자 대신 사회적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한겨레신문』) 가부장제가 공고하던 18세기 시절 ‘사회적 유전자’를 남긴 여성이 있으니 그 이름은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이다. 

윤지당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성리학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으로 이름을 날린 오빠 임성주였다. ‘윤지당’이라는 당호도 임성주가 지어준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는 관학(官學) 교육이 유명무실화되면서 양반집에서는 독선생을 초빙해 자녀 교육을 했다. 그러자 여성도 출가하기 전에 남자형제와 함께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윤지당도 그랬다. 동생 임정주의 회고에 따르면 “누님은 형님에게서 수학했다”고 한다.

윤지당은 열아홉에 자신보다 한 살 적은 원주의 선비 신광유와 혼인했다. 그런데 혼인한 지 8년 만에 남편이 죽고 어렵게 얻은 아이마저 어려서 죽고 말았다. 남편도 피붙이도 없는 윤지당은 시동생들과 한 집에서 살았다. 나이 마흔이 넘어 시동생 신광우의 큰아들을 양자로 입양했으나 그 양자마저 스물여덟 살에 죽고 말았다. 그때 윤지당은 “속담에 세월이 약이라 하나 이제 나의 고통은 갈수록 더 심해진다. 아마도 내가 죽어야만 이 비통이 사라질 것이다”면서 절망스러운 심정을 토해냈다.

혼인 후 계속 불행한 일을 겪은 윤지당에게 학문은 고단한 삶을 유지하는 버팀목이었다. “나는 타고난 운명이 기이하게도 박복했다. 앞으로 바라보고 뒤로 돌아봐도 위로할 것이 없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나처럼 박복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주신 것이 이처럼 가혹하지만 이는 나로 하여금 마음을 분발시키고 인고의 성품을 길러 부족한 점을 증대시키려 하심이 아닐까?”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울퉁불퉁한 삶이 학문의 길로 나아가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윤지당은 “어릴 때부터 성리(性理)의 학문이 있음을 알았다. 조금 자라서는 고기 맛이 입을 즐겁게 하듯이 학문을 좋아해 그만두려 해도 할 수 없었다. 이에 감히 아녀자의 분수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경전에 기록된 것과 성현의 교훈을 마음을 다해 탐구”했다. 그리고 예순다섯이 되던 해에 자신의 원고를 동생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비록 식견이 천박하고 문장이 엉성하여 후세에 남길 만한 투철한 말이나 오묘한 해석은 없지만, 내가 죽은 후에 장독이나 덮는 종이가 된다면 비감한 일이 될 것이다”고 하면서 책으로 엮어지기를 당당히 밝혔다. 그 바람대로 윤지당의 글은 그녀가 작고한 지 3년 후인 1796년에『윤지당유고』로 간행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는 시(詩)가 한 편도 없다. 그 대신에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 「극기복례위인설(克己復禮爲仁說)」같은 성리학에 관한 독창적인 논문이나 여성 전기, 성현의 인물론, 발문(跋文), 제문(祭文) 등 남성의 글짓기 영역으로 알려진 주제로 가득하다. “내가 비록 여자의 몸이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의 차이가 없다”고 여긴 윤지당의 실천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는 “여성의 역사는 여성 삶을 변화시킨다. 여성의 과거 경험에 대한 짧은 접촉이더라도 여성들에게 심리적으로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삶의 발자취를 아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윤지당은 당대 사회에서 후손을 남기는 ‘천륜’을 다하지 못한 대신 사회적 유전자를 남겼다. 윤지당의 글은 퍼져나갔고,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 여성들에게 걷고 싶은 길이 되었다.

강정일당(姜靜一堂)이 지은 『정일당유고』(1836년)에는 윤지당 이름이 두어 번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남편에게 쓴 편지에 들어있다. “윤지당이 말하기를, ‘내가 비록 여자의 몸이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이야 애초 남녀의 차별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여자라도 노력하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서방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처럼 윤지당이 평생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이라고 걸어갔던 그 길, 즉 성품에는 남녀의 차이가 없다는 신념을 강정일당이 고스란히 이어받아 다시 그 길로 걸어간 것이다. 윤지당이 남긴 사회적 유전자가 꺼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는 멋진 순간이다.

 

 

정해은=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한국여성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조선시대 여성의 삶과 사유방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최근 저서로『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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