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성북동, 사색의 옛길을 걷다
2. 문인의 기억, 인생 그리고 문학관
3. 이상의 집터에는 ‘날개’가 없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란 말처럼, 가을은 날씨가 서늘해 글을 가까이하기 좋은 계절이다. 가방을 가볍게 메고 근처에 있는 문학 공간을 찾아가 보자. 본지는 ‘문학만보’를 통해 가을을 맞아 성북동, 종로구의 근현대 국문학의 산실, 사라진 문인의 집터를 되새겨본다. ‘만보’는 ‘한가로이 거닐다(漫步)’와 ‘만 가지 보물(萬寶)’이라는 뜻이 있다. 문학만보는 세 번의 기행을 통해 보물과 같은 우리 문학의 흔적을 찾아 거닌다.
 

 오수당에 앉아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을 그리다

 한성대 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 성북동 주민 센터를 지나면 ‘원희 패션’이라는 오래된 의상실이 보인다. 의상실과 ‘제일 크리닝’ 사이로 난 골목을 들여다보면 최순우 옛집을 가리키는 표지판과 마주한다.

 ‘최순우 옛집(등록문화재 제268호)’은 4대 국립박물관 관장으로 지낸 고(故) 혜곡(兮谷) 최순우가 1976년~1984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최순우는 이곳에서 유고작인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를 집필했다.

 80년의 역사가 남아 있는 이곳은 ‘ㄱ’자 모양 본채와 ‘ㄴ’자 모양 별채가 만난, 귀퉁이가 터진 ‘ㅁ’자 구조를 이루는 한옥이다.

 ‘ㄱ’자 모양 본채는 여유롭다. 본채의 넉넉한 사랑방인 오수당(午睡堂)은 ‘낮잠 자는 방’이라는 뜻으로 최순우가 집필실로 사용했다. 오수당에서 건넛방을 들여다보면 대청에 최순우의 사진과 함께 안경, 파이프 담배 등 유품이 전시돼 있다.

 우물과 아담한 정원이 있는 앞뜰에는 향나무, 소나무 같은 나무와 수국, 모란과 같은 꽃이 자란다. 멋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은 뒤뜰이다. 이 곳에서 최순우는 미술사학자 소불(笑佛) 정향모, 미술평론가 석남(石南) 이경성 등이 모여 만든 미술당 회원들과 예술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뒤뜰은 감나무, 상사화, 소나무 등이 석조물과 함께 어우러져 작은 숲 같다. 뜰 가운데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널찍한 바윗돌도 놓여 있다. 너른 바위에 앉으면 오수당 문 앞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란 글귀가 생각난다. 최순우가 직접 쓴 이 글귀는 ‘문을 걸어 잠그니 이곳이 깊은 산이다’라는 뜻이다.

 최순우 옛집은 성북동 재개발 때 헐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자연 보호와 사적 보존일을 하는 민간단체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는 모금 운동을 통해 최순우 옛집을 사들여 관리하고 있다.

 최순우 옛집을 돌보는 자원 봉사자들은 학생, 주부 등 시민이다. 이들은 정원의 꽃, 나무에 물을 주고, 장독대를 닦거나 이곳을 찾아온 손님을 다정하게 반긴다.

 최순우 옛집에서는 부정기적으로 특별전을 개최한다. 15일(토)~31일(월)에는 ‘혜곡 최순우가 찾은 우리 문화’를 주제로 ‘부석사 무량수전 특별전’을 연다. 8일(토)~9일(일)에는 1박2일 일정으로 영주 내성천과 부석사 답사 기행을 진행한다. 19일(수) 오후5시에는 한국종합예술학교 김봉렬 교수(건축과)가 ‘이 땅에 새겨진 정신-부석사’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다.


 수연산방 누마루에 올라 ‘달밤’의 찻잔을 기울이다

 최순우 옛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나와 간송미술관 방향으로 10분 정도 직진 하다 보면 쌍다리길이 나온다. 쌍다리길에서 다시 오른쪽 길로 꺾어 걷다 보면 ‘성북구립미술관’있고 그 오른편에는 단아한 한옥 한 채가 보인다. 소설 「황진이」를 집필한 고(故) 상허(尙虛) 이태준의 옛집 ‘수연산방(서울시민속자료 제11호)’이다.

 수연산방은 현재 이태준의 외종 손녀인 조상명씨에 의해 전통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수연산방은 1933년에 지어진 개량 한옥으로 ‘문인들이 모이는 숲 속의 작은 집’이라는 뜻이다. 문인들이 모이는 이곳, 수연산방에서 이태준의 「황진이」,「달밤」, 「돌다리」 등이 탄생했다.

 이태준은 문장이 아름다운 작가로 평가받는다. 「황진이」에서 그의 노랫가락과 같은 문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회똑회똑 가 벽장문을 열더니 회장 밑에 겨드랑이 드러나도록 팔을 높여 한 쌍의 작은 색 상자를 꺼내왔다. 상자마다 뚜껑을 여니 알룩달룩한 비단 오리가 붕싯이 비져나온다. …(후략)’

 단정한 돌계단을 올라 대문을 지나면 서남향으로 지어진 한옥이 멋스럽게 펼쳐져 있다. 수연산방은 별채 없이 사랑채와 안채로 결합한 본채로만 이뤄져 있다. ‘ㄱ’자 구조의 본채를 따라 늘어선 장독대와 한쪽에 작게 지어진 오두막이 정겹다.

 대청의 남쪽에는 안방이 있다. 안방 앞에 있는 작은 방 한 칸 크기의 누마루(사랑채에 주로 설치된 다락방처럼 높은 마루)는 단연 수연산방의 명당자리다. 오밀조밀하게 짜인 창틀 너머로 뜰을 보며 차를 마시면 호젓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누마루에서는 이태준의 「달밤」이 떠오른다. 성북동이 배경인 「달밤」의 시작은 이렇다.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보던 신문을 머리맡에 밀어 던지고 누워 새삼스럽게, “여기도 정말 시골이로군!” 하였다. 뭐 바깥이 컴컴한 걸 처음 보고 시냇물 소리와 쏴-하는 솔바람 소리를…(후략)’

 고운 빛깔의 방석과 방안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화분도 이곳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방 한쪽에는 이태준이 쓴 책, 가족사진, 명예 졸업장 등이 전시됐다.

 김희경(성남시 분당구·27)씨는 5월 간송 미술관에서 만난 외국인 모녀를 통해 수연산방을 알게 됐다. 김씨는 “수연산방은 문학적 삶과 생각이 가득한 공간”이라며 “이곳에서 글을 쓰는 누군가도 분명 영감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연산방 정예선 담당자는 “이태준 선생님은 한국 문학에 새로운 관점을 보이고 국문학 교수로 자리매김했음에도 월북 작가라는 타이틀이 좋은 인식을 받지 못해 이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며 “90년대 이후, 작품이 재조명받으면서 많은 문인과 대학 교수님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 됐고 전통 찻집을 권유받았다”고 수연산방 찻집 운영의 계기를 밝혔다.


 심우정 소나무에서 만해 한용운의 고고한 의지를 보다

 수연산방의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분위기와 달리 ‘심우장’은 고(故) 만해(萬海, 卍海) 한용운의 고요한 고택이다.

 수연산방으로 향하는 반대 갈림길에 들어서서 10여분 정도 걸어가면 ‘심우장(서울시특별기념물 제7호)’이라고 쓰인 낡은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표지판을 따라 좁은 계단 길을 오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한용운의 독립운동 동지인 고(故) 위창(葦滄) 오세창이 쓴 현판 ‘심우장(尋牛莊)’이 보인다.

 심우장은 ‘님의 침묵’을 집필한 만해 한용운이 1933년~1944년에 지낸 곳이다. ‘심우’라는 뜻은 불교의 선종 그림 중 하나인 ‘심우도’에서 유래해 깨달음을 의미하는 ‘구도(求道)’를 뜻한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대부분 양옥집 방향인 남향이 아니라 북향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한용운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당시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조선 총독부와 마주 보게 됐는데 이 때문에 볕이 잘 드는 남향집을 거부하고 북향집으로 짓게 됐다.

 심우장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소나무를 볼 수 있다. 90년이 넘은 소나무는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빼어나다. 경치가 잘 보이는 곳에는 한용운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심우장 문 앞에는 초서(草書)로 유명한 서예가 고(故) 일창(一滄) 유치웅의 친필 편액(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이 걸려있다. 내부에는 한용운의 초상화와 함께 「님의 침묵」 판본, 친필 등이 전시됐다. 그중에서도 「오도송(悟道頌)」은 한용운이 1917년에 설악산 오세암에서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 시로 현재 친필 서각(書刻)으로 남아 있다.

 ‘男兒到處是故鄕(사나이가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이지)/幾人長在客愁中(몇 사람이나 오랫동안 나그네 근심 속에 있었나)/一聲喝破三千界(소리 한 번 내어 꾸짖어 우주(삼천계)를 깨트리니)/雪裡桃花片片紅(눈내리는 속에 복사꽃이 조각조각 날리네)’


 자야, “1천억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해…”

 심우장을 벗어나 삼각산을 오르면 시인 고(故) 백석(본명 백기행)과 고(故) 자야(子夜) 김영한의 이야기를 간직한 길상사를 만날 수 있다.

 길상사는 심우장에서 나와 버스 1111번 종점 방향으로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언덕을 오르면 ‘한국 가구 박물관’이 보이는데 그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다.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중략)…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자야’는 백석이 김영한에게 붙여준 별호다. 김영한은 백석의 연인으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실제 ‘나타샤’로 알려졌다. 그는 백석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이별 후 길상사 내부에 있는 길상헌에서 머문다. 그는 평생 백석을 기리며 「내 사랑 백석」이라는 자서전을 펴내고, 창작과 비평사에 2억원의 기금을 기증해 ‘백석문학상’을 제정을 돕는다.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요정(料亭)이었다.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송광사에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1995년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 1997년 ‘길상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당시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길상사의 주지로 지냈다.

 이곳의 대부분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찰은 이전에 요정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기와로 꾸민 담장이나 계단도 자연 풍경과 잘 어울린다. 스님들이 묵언 수행을 하는 공간이 곳곳에 있어 절로 발걸음을 조심하게 된다.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다.’

 법정 스님의 말이다. 가을날 자신을 찾는 문학 기행을 떠나보자.

 

 참고문헌

성북구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tour.seongbuk.go.kr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와사회, 2003
이은식, 「지명이 품은 한국사」, 타오름, 2010
이태준, 「달밤」, 맑은소리, 1999
이태준, 「황진이」, 깊은샘, 1999
장태동, 「서울 문학 기행」, 미래 M&B, 2001
허병식, 「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 터치아트, 2009
하희재,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한길사, 2008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성북동 잊혀져가는 우리동네 옛 이야기를 찾아서」,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0


 최순우 옛집
최순우 옛집의 관람은 4월~11월 오전10시~오후4시에 가능하며, 입장은 오후3시30분까지 해야 한다. 특별전시 기간에는 오후5시까지 개방한다. 매주 일요일, 월요일은 휴관이며 관람 요금은 무료다. (문의: 02-3675-3401)

 수연산방
수연산방은 휴일 없이 정오~오후10시30분까지 영업한다. 수연산방을 둘러보는 것은 무료이며, 전통차, 인절미 등은 5천원~1만3천원 가격대에 판매된다. (문의: 02-764-1736)

심우장
심우장의 개방 시간은 오전10시~오후6시이며, 입장료는 무료다. (문의: 02-920-3058)

길상사
길상사는 오전4시~오후8시 입장이 가능하며 입장료는 무료다. (문의: 02-3672-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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