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면 감정이 여려진다더니, 내가 그렇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사소한 감동에 울컥, 먹먹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찔끔 눈물이 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예컨대 위대한 탄생이나 슈퍼스타 K. 나는 전 과정을 거의 빼놓지 않고 보았다. 누가 우승할지 궁금한 때문이기도 했고 참가자들의 아마추어 같지 않은 실력에 감탄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 볼까 부끄러워 눈물 흐르는 얼굴을 돌리면서까지 열심히 본 근본적 이유는 정작 다른 데에 있었다. 그들이 저기까지 올 때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연습의 시기를 지나왔을까에 대한 대견함과 안타까움이었다.

단지 백청강이나 허각뿐만이 아니다. 비록 중간에서 탈락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참가자자들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위해 그들 모두 얼마나 길고 긴 훈련의 시간을 보냈을까. 때로는 너무 힘들어 주저앉기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아예 포기하고픈 생각조차 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실력을 보이기까지 무수히 많은 실수의 과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연습 없이 무슨 성과가 있을 것이며, 실수 없이 어떻게 처음부터 완벽할 수 있으랴. 난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노래 실력보다는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들의 겪어왔을 실수 가득한 고된 연습과정에 더욱 마음이 끌렸던 셈이다.

얼마 전 SBS 스페셜에서는 개그맨 김병만을 조명했다. 우연히 밤 늦게 보게 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는 또 주책없이 훌쩍거리고 말았다. 그는 남을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21세에 단돈 30만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비단 가난뿐만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훨씬 작은 키, 심한 평발, 게다가 소심함에 심각한 무대공포증까지 있었다. 결코 개그맨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개그맨 공채 시험 7번 낙방과 방송연예학과 실기시험 9번 탈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김병만은 좌절과 포기를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단점을 이겨내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다. 오랜 무명의 시간을 그는 연습으로 버텼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최고의 개그맨이 되기까지의 삶의 과정이 나를 방송 내내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방송에서 그는 말했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그 믿음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실 그 말은 내가 이화의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2008년 2학기, 그러니까 내가 이화에 온 다음 해였다. 대학원 수업 첫 시간에 들어가니 남학생이 절반이었다. 중령급 정도의 국방대학교 학생들이었다. 현역 군인인 그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할까 미심쩍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우리 학생들보다 덜 성실했다. 우리 학생들은 한 번도 하지 않는 결석을 그들은 종종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질문은 그들이 도맡아 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질문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궁금하면, 바로 질문했다.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알고 싶어 질문하는데,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자세였다. 따라서 질문의 수준이 높든 낮든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내 실력을 키우는 것이지, 수업을 함께 듣는 동료들의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투였다.

반면 우리 학생들은 주뼛거리기 일쑤였다. 스스로 질문은커녕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워 했다. 답이 틀릴까봐 부끄러워 주저주저했다. 실수를 두려워하고, 실수에 익숙하지 않는 탓이리라.
학기 말, 리포트를 받아보니 더욱 명확했다. 우리 학생들의 리포트는 길고도 예뻤다. 다양한 자료를 읽고 정리를 깔끔히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안에 본인의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잘 정돈된 기존 자료의 요약에 불과했다. 반면 국방대학교 학생들의 리포트는 달랐다. 두 세장에 불과했고 내용은 투박했지만, 자신의 주장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기존 지식을 흡수하는 것이라면 대학 공부는 기존 지식의 이해 위에서 본인의 생각을 키워 나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실수는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장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 실수는 실패일 가능성이 있어도 학교에서의 실수는 성공을 위한 연습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국방대학교 학생들에게 A를 주었고 B는 우리 학생들의 차지였다.
부디 여러분이 기억하기 바란다. 여러분의 나이에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