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고 늘었어요. 주름! 주름! 술 먹고 부었어요. 내 간! 내 간!”

9월2일 오후4시 동대문구청 2층 강당, 주민과 직원 약500명이 일명 ‘절주송’과 ‘금연송’을 박수를 치며 부르고 있다. 강당 위에는 주민들이 피아노, 신디사이저, 큰북, 카바사, 윈드차임, 소고 등 약10개의 악기 앞에 서서 신나게 연주하고 있다. 이 노래들은 힙합, 클래식, 트로트, 타악기연주, 합창연주 등으로 바뀐다. 서울시 주민대상 교육 최초로 음악치료기법이 사용된 이번 동대문구 절주 및 금연교육에는 지루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번 절주‧금연 교육에 쓰인 음악을 만들고 직접 주민들을 교육한 이화인이 있다. 바로 김군자(심리학 박사‧01년졸)씨다. 그는 트로트 ‘땡벌’, ‘샤방샤방’의 음을 이용해 ‘절주송’, ‘금연송’을 만들었다. 김씨는 최근 본교 평생교육원에서 음악치료 지도사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노숙자, 군인 등을 위한 치료도 계속하고 있다.

“흡연과 음주는 스트레스로 인해 계속되죠. 하지만 음악치료에서 주민들이 직접 북이나 소고를 두드리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가사를 흥얼거리다보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도 풀고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교육 과정을 즐거워하는 주민들의 모습에 가르치는 저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금연송’을 부르며 강당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죠.”

현재 국내 음악치료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가 음악치료를 시작한 것은 김태령 교수(전 심리학과), 추국희 교수(전 특수교육학과)와의 인연 덕분이었다. 본교 언어청각임상센터에 음악치료가 도입됐던 1981년, 김교수와 센터 소장이셨던 추교수가 그를 음악치료사로 추천한 것이다.

“피아노를 전공했던 제가 1달에 1번씩 피아노 과외 선생님을 바꾸던 추교수의 딸을 10년 동안 가르쳤죠. 그때 아이의 눈높이에서 음악을 재밌게 가르치는 제 모습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 같아요.”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음악치료였지만 그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본 후 이 직업이 주는 매력에 빠지게 됐다. 자살을 4번이나 시도한 군인이 3개월의 치료 끝에 자신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의지를 다졌고, 말을 못하던 아이는 어느 새부턴가 조금씩 노래를 따라하게 됐다.

“말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에게 3~4번의 수업 동안 노래 ‘동구밭 과수원길’과 ‘반달’을 재즈버전, 빠른 버전 등으로 계속 불러줬죠. 그 다음 수업에서는 ‘달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까지만 부르고 제가 가만히 있어요. 그럼 그 아이가 작게 ‘달’하고 읊조리고 그 후에 아이는 노래를 조금씩 따라 해요. 이처럼 아이의 변화를 볼 때 정말 뿌듯했죠.”

김씨의 치료는 그의 피아노 즉흥연주와 환자들의 악기연주로 진행된다. 녹음된 음악을 틀어주기보다 즉흥 연주가 내담자와 상담자의 라포(Rapport, 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 형성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즉흥연주를 통해 한 버전이 아닌 메조, 장조, 단조 곡 등의 다양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환자들이 음악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점이다. 음악치료와 더불어 미술 및 상담치료를 함께 진행하기도 한다.

“장애아, 알콜 중독자, 우울증 환자 등 모든 환자들은 외로움이 해결되면 금방 나아져요. 녹음된 음악을 틀어주는 것보다, 그들과 제가 함께 서로의 박자와 음에 맞춰 하나의 소리를 즉흥적으로 만들면 환자들에게 협동과 조화의 소중함을 알려줄 수 있죠. 음악치료를 끝낸 후 하는 상담과 미술치료 역시 그들이 저에게 마음을 더 열도록 돕죠.”

자신만의 치료법을 만들기까지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그가 음악치료를 시작한 1980년대는 국내에 음악치료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때다. 1990년대까지도 한국인의 사례가 소개된 전문서적과 전문가가 없었다. 연구에 대한 선례가 없어 내담자들에게 어떤 치료를 해줘야할지를 몰랐다. 결국 그는 음악치료에 대해 더 공부하기 위해 1998년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부부, 아이들, 노숙자 등 많은 사람들을 음악으로 치료하며 경험을 쌓았어요. 다양한 외국음악치료서적을 일주일에 3~4권을 읽기도하고 하루에 2~3시간 정도는 피아노 연주를 꼭했죠. 이 내공을 통해 다양한 책을 썼고, 국내 음악치료의 선구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어요. 지금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요.”

김씨는 다른 음악치료사들이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겪게 해주고 싶지 않아 직접 책을 썼다. 그의 손에서 「음악치료학」, 「음악치료 사례 연구집」, 「자폐아를 위한 음악요법」 등 다수의 음악치료 관련 서적이 탄생했다. 1996년에는 대한음악치료학회를 만들어 국내에도 음악치료가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1998~2000년 본교 교육대학원 음악치료학 전공의 겸임교수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난 직후에도 제자의 음악치료 논문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김씨.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계속된 음악치료에 대한 그의 열정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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