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은 미술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6)
디지털 기술은 미술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6)
  • 전혜숙 교수
  • 승인 201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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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미술 - 의학기술과 DNA를 이용한 작품들

최근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종종 생물학과 의학의 ‘연구와 실험’에 직접 참여해 만든 것들을 볼 수 있다. 미술가들은 IT기술 덕분에 볼 수 있게 된 신체내부의 새로운 이미지를 미술표현의 일부로 사용해 충격을 주거나, 미술가 자신이 과학자처럼 직접 DNA를 이용한 실험으로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대체로 이러한 미술은 신체가 과학기술과 결합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인간정체성의 변화와 윤리, 철학적 쟁점에 초점을 맞춘다.

1990년대 이후 활발해진 각종 휴먼 프로젝트들은 MRI와 CT 등 디지털장비로 단층촬영된 인체의 모든 부분을 이미지로 DB화 하거나, 인간 유전자정보의 총합인 게놈을 시퀀싱하고 그 결과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인간신체를 디지털이미지와 유전자정보로 환원시켰다. 정교해지고 정확해진 신체내부의 영상이미지들과 DNA 이미지들은 사이버공간 안에 존재하면서 가상의 3차원적 신체로 재조합되었고, 의학 진단뿐 아니라 온갖 대중매체를 위한 기본 자료로 재생산되었으며, 미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례정확한 해부학들이 인간중심의 지식과 기술적 근대성의 도상으로 기능했던 것처럼, 이제는 신체내부의 낯선 풍경들과 디지털이미지들이 인체의 새로운 도상학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미술가인 모나 하툼은 <낯선 신체>에서 각종 내시경으로 촬영해 얻은 자신의 신체내부 이미지들을 원통형 방의 내부 바닥에 투사하고 사운드트랙으로 심장이 뛰는 소리를 틀어놓았다. 그녀는 의학기술과 복잡한 생리적인 과정들에는 무지한 채 권위 있는 ‘정확한 과학적 눈’ 앞에서 상처받기 쉬운 인간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신체 내부를 촬영할 수 있는 의학기술을 남성적 응시(gaze)를 비롯한 권력화된 시선에 빗대어 비판했다.

마크 퀸은 1991년 자신의 머리를 캐스팅한 자화상 조각에 피 추출물을 주입한 후 마치 대리석 조각처럼 대좌 위에 올려놓고, 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냉장시설을 요구해 유명해진 미술가다. 2001년 영국의 국립초상화갤러리가 그에게 유전학자 존 설스턴경(노벨의학상 수상자)의 초상을 의뢰했을 때, 그는 설스턴경의 정액에서 DNA를 추출해 추상적인 이미지의 초상화를 만들었다. 추출된 DNA를 복제하는 마크 퀸의 방식은 바로 설스턴 경이 만든 DNA 복제표준방식이었다. 이것은 주인공의 외부(외모)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부를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증명한 초상화였다. 국립초상화갤러리에 전무후무하게 남게 된 독특한 이 초상화를 퀸은 ‘유전자 초상화’라고 명명하였다.

또 포르투갈 출신 미술가로 생물기술학과 미술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마르타 드 메네제스는, 단백질이 20여개의 서로 다른 아미노산으로 되어 있고, 각각의 아미노산은 하나의 문자 코드로 나타낼 수 있으며, 이러한 규칙을 이용하면 각 사람의 이름에 부합하는 아미노산 시퀀스의 단백질을 디자인할 수 있으리라는 데 착안해 자신의 이름을 이용한 단백질 구조로 초상화를 만들었다. 단백질은 일정한 길이를 넘어야만 흥미로운 선적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녀는 포르투갈 가계(家系)의 이름들을 총동원해 만든 단백질을 디자인한다. 그녀는 이렇게 만든 ‘MARTAISAVELRIVEIRDEMENESEDASILVAGRACA’라는 단백질에 대해 이제까지 알려진 단백질구조를 바탕으로 컴퓨터로 예측한 후, 3차원 구조의 형태로 전환시켰다. 이것이 바로 <단백질 초상화>란 작품이다. 이것 역시 그녀를 닮은 초상이 아닌 그녀 이름의 서열에 가장 가까운 새로운 단백질이자 미술가에 의해 새로 고안된 초상화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DNA가 초상화를 대신할 수 있는 특수한 의미의 새로운 매체로 사용될 수 있음에 동의하고 있으나, 과학적 결과의 정확성보다는 위트와 풍자적 표현을 통해 창조적 결과를 얻는 데 더 의미를 두고 있다.

20세기의 미술가들이 물감을 벗어나 사진, 비디오, 컴퓨터를 매체로 사용해왔듯이, 21세기의 미술가들은 DNA와 혈액 등 생물학적 요소들을 매체로 이용해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들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필수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의학장비들을 이용해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매혹적이고 낯선 신체내부풍경을 포착한다. 미술가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인체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들이 이제까지 인간이 신체를 이해하고 재현해온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으며, 자아의 정체성과 개념의 변화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